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2021년 기준 56.9kg으로, 한 사람이 1년에 210g 햇반 270개를 먹는 것과 같다. 통계청의 ‘양곡소비량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90kg에 달하던 쌀 소비는 불과 20년 만에 1/3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밥보다 면과 빵을 찾는 식습관 변화에서 기인했다. 6·25전쟁 이후 식량부족 사태로 해외 밀가루 원조를 대량으로 받기 시작하면서 밀 수입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밀가루 공급 증가로 빵과 면에 대한 선호가 늘어났다. 이로써 ‘밥 한 끼 하자’는 말은 쌀밥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밀가루 소비는 꾸준히 증가하여,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35kg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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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1인당 쌀 소비량 변화 – 출처:통계청) |
소비량과 맞지않는 공급 - 쌀은 과잉공급, 밀은 수입의존
쌀 생산과 소비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전북 장수군 농민 정상득 씨(58)와 10월 27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10월 16일부터 26일까지 벼수확을 진행했다. 총 농사 규모는 논 28,000평으로, 하루에 약 4필지(약 18마지기: 3,600평) 규모의 벼를 수확했다. 수확량은 200평당 벼 520kg으로 하루 평균 9t의 벼를 수확한다. 전국쌀생산자협회가 2022년 논 200평당 평균 생산량을 440kg으로 전망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양이다. 여름 태풍 피해도 없었고 이전보다 농사가 잘 됐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는“사부작사부작 시나브로 베기는 허는디, 잘 팔릴지는 모르겄네”라며 올해 벼값이 많이 떨어진 것에 우려를 표했다. 2021년 벼 40kg 포대 1개당 가격은 7만 원에 가까웠으나, 올해 풍작으로 인한 급격한 가격하락이 예견되어 한 포대당 4만 5천 원대로 전망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매년 쌀 가격은 등락 폭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 자연재해 영향을 받아 생산량이 변화하는 것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쌀 공급의 과잉이 일어나 정부가 대처하는 바에 따라 가격변동이 크게 일어난다. 21년 기준 우리나라 쌀 전체 생산량은 338.2만 톤에 달한다. 여기에 매년 수입되는 쌀 약 40만톤을 합하면 한 해 공급량은 380만 톤에 달한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국내 쌀 소비량은 350~360만 톤에 불과하다. 1인당 소비량이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즉석밥·막걸리 등 쌀 가공식품 기업들의 수입쌀 대체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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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벼 수확 작업 – 출처: 직접 촬영) |
쌀과 함께 국민 주식을 이루고 있는 밀의 공급은 수입률 99%로 완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밀 생산량은 1.6만 톤에 불과하며 자급률 0.8%의 낮은 수치를 보인다. 이마저도 가축 사료용 밀을 포함한 국내 밀 소비량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수입의존 구조로 인해 국내 밀 공급은 세계 밀 가격변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단적인 예로 올 초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으로 국내 빵, 과자, 라면 등 밀가루 식품의 가격 상승이 일어난 바 있다. 공급체계의 불안정으로 수요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불균형한 기본 식량 공급구조
국내 농업의 불균형한 구조는 경제성장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으로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이는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와 조선업 등 세계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지만, 농업 등은 값싼 수입 농산물에 의해 몰락하게 되었다. 그나마 쌀 자급률이 거의 100%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농업계의 반발로 쌀 부문의 관세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 옥수수 등의 작물은 수입률 99%에 달할 정도로 생산 기반이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값싼 수입 농산물의 경쟁에서 그나마 보호받는 쌀 생산으로 몰렸고, 밀과 다른 작물 생산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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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해외의 대규모 농업 생산은 농산물 가격을 낮춘다. 출처-픽사베이) |
오늘날 농업구조의 불균형은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오로지 농민과 소비자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쌀값 폭락이다. 정부는 쌀값 폭락 원인을 농민들의 과잉 생산에서 찾는다. 이 때문에 정부의 쌀값 안정 대책은 벼농사 대신 다른 작물을 심도록 지원하는 적정생산과 긴급히 쌀을 사들이는 긴급수매 대책 수준에서 그친다. 정부 입장과 달리 농민들은 억울한 심정이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 WTO와 2014년 쌀 개방 협상을 했다. 이 협의에 따르면 정부는 타 상품에서 낮은 관세를 유지하며 수출할 수 있는 대신, 의무적으로 매년 쌀 40만8700t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수입쌀로 인해 국내 쌀 공급이 교란된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쌀을 생산해봐야 소득이 적은 것도 문제다. 정상득 씨는“쌀 팔아봐야 돈도 못 건져. 계속 (생산량을)줄이라고 하는데, 그럼 나는 뭘 심나”라며 올해 쌀값 폭락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최근 공깃밥 가격을 2000원으로 올린 곳이 있을 정도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쌀값은 비싸다. 그러나 생산지의 상황은 다르다. 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 농협과 도·소매 업체를 통하는 유통구조의 복잡성은 농가소득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더한 쌀값 하락은 농가의 농업소득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정상득 씨는 2016년 쌀값 폭락 당시 본인 소유의 논을 갈아엎는 투쟁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올해 역시 기록적인 쌀값 폭락으로 인해 지난 9월부터 전국적으로 쌀값을 보장하라는 논 갈아엎기 시위가 일어났다.
밀 수입구조는 ‘밀가루 대란’으로 소비자 부담을 키웠다. 국내 밀가루 가격이 상승하자 소비자들은 식료품 가격의 상승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면 요리나 빵을 판매하는 자영업자들이 원자재 상승으로 인한 비용증가 문제를 겪었다. 정부는 뒤늦게 국산 밀 수매를 늘렸고, 밀 생산에 대한 지원책을 늘린다며 2030년까지 밀 자급률 10% 달성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수입 밀과의 가격경쟁 대책, 우리 밀 재고 소비 등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반도체 살리듯이 농민부터 챙겨야
쌀과 밀은 우리의 주식으로 매 끼니를 책임지는 중요한 작물이다. 농업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분야인 셈이다. 이 작물들의 생산·소비 과정이 불균형적인 것은 장기적인 식량 수급에 위협이 된다. 정상득 씨는 정부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농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농업은 뒷전이라 신경도 안 써. 반도체 살리듯이 농민부터 챙겨야 뭣이고 하지” 불균형한 농업구조를 유지하는 한 우리의 밥상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 기본 식량의 공급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안정적으로 공급·소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농업정책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대환 (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