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신드롬급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종영했다. 드라마의 인기로 주인공 우영우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까지 조명받았는데, 우영우 아버지인 우광호도 그중 한 명이다. 극 중 우광호는 홀로 자녀를 키워낸 미혼부로 자신의 꿈을 접고 딸을 키우기 위해 헌신해 온 아버지로 그려진다. 그는 장애 아동의 부모이자 미혼부로써 겪는 고충들을 혼자 견뎌내며 딸을 키웠다. 그 결과 하나뿐인 딸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잘살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처럼 살아갈 수 있는 미혼부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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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아기의 자그마한 손) 출처-픽사베이 |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아이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조사된 미혼부는 총 6,307명으로 이는 전체 미혼모, 미혼부 중 23.4%(전체 26,652명)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아이가 출생신고를 완료하지 못한 미혼부는 집계에서 제외된 수치이다. 출생신고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까지 합치면 통계보다 더 많은 미혼부가 국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기가 태어날 때 병원에서 출생 증명서를 부모에게 제공한다. 부모가 이를 가지고 주민센터에 제출하면 아기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만 아기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46조 2항에 따르면 ‘혼인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아기의 생부(生夫)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친부임을 밝혀도 출생신고를 허가받지 못하고 있다. 출생신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15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57조를 통해 ‘친생자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 일명 ‘사랑이 법’이 제정되었으며, 2019년에도 ‘어린이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해인이 법)’이 통과되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그 이유는 ‘생모가 누군지 특정되어있는 상황이라면 모(母)가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설령 생모가 자녀를 두고 사려졌다고 해도 출생신고는 생모 중심이다. 따라서 해소 법안이 마련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내 아이를 지킬 수 없다
출생신고 사각지대 문제는 단순히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출생신고가 안되어있다는 것은 아기가 국가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파서 병원에 가도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없고, 심지어는 아기가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병원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생부가 상황을 해명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또한 한부모 가정이 대부분 그러하듯 자녀를 어딘가에 맡겨두고 부모가 일을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출생신고가 안 된 자녀를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혼자 보다 보니 일에 집중해 돈을 벌 시간도 없을뿐더러 이러한 미혼부들을 받아주는 곳도 국내에 많지 않다. 만약 출생신고가 가능했다면 자녀 보육료 지원과 아이돌봄 서비스, 저소득 한부모 가족 지원 혜택 및 여러 지원 등을 통해 좀 더 아이 양육에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부모 가정 지원 기관인 '아빠의 꿈'의 김지환 대표는 미혼부들의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조명하고자 유명 유튜브 채널에 출현해 이를 알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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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아이를 안고있는 아버지) 출처-픽사베이 |
최소한의 기본권은 보장될 수 있도록
최근 언론, 드라마 등을 통해 미혼부를 종종 등장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놓인 현실과 출생신고 시스템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른 상황이다. 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9월에는 국무조정실에서 “현행 모(母) 중심의 출생신고제도를 개선하고 정부의 각종 지원제도를 ‘아이’에 초점을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며 관계부처에 협조를 요구했다. 보건복지부에는 출생신고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의료복지 혜택을 신속히 제공할 방안을 검토하도록 권고했고, 여성가족부에도 미혼부 자녀에 대한 아이돌봄 서비스 제공 마련을 지시했다.
국가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과 기업에서도 미혼부 지원에 대한 움직임을 꾸준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와디즈 사회공헌팀 ‘와디즈wa’에서 미혼부 가정 자립을 돕는 ‘1천만 원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지난 9월에는 NGO 단체 희망 조약돌에서 한국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 ‘아빠의 품’과 국내 미혼부 및 한부모 가정 지원 확대를 위한 사회공헌 업무협약을 맺었다.
존재만으로 인정받는 사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하지만 모든 가족이 인정받고 있지는 못한 현실이다. 한부모 가정이 늘어나면서 미혼모, 미혼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쪽에선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출생신고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출생신고가 더 이상 부모 중심이 아닌 출생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모는 아이의 보호자로서 출생신고의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출생한 아이에게 집중해 존재만으로 국가로부터 출생을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경수 (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