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일명‘조력 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기존 법률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 추가된다. 이 같은 내용을 두고 가망 없는 환자에게 ‘웰 다잉’의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어 찬성한다는 입장과 대책 없이 죽음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대의견이 대립하였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당 개정안을 찬성하는 이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환자와 간병인들을 힘들게만 만든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죽음의 문턱에서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연명치료를 계속 받거나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가 죽음을 기다리는 방법뿐이다. 연명치료를 하게 된다면 추후 호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말 그대로 생명만을 유지한 채 죽음을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간병인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고, 병원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간혹 연명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경우가 많지는 않다. 대부분은 치료가 길어지고 점차 주변인들이 지쳐가면서 희망 고문이 되고 만다. 현행법(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목숨만을 연장하는 목적의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경우에만 합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기 암 환자 혹은 그 외에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이들은 선택권조차 없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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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호스피스 신규 환자 수 출처-중앙호스피스센터) |
한편으로는 법률안 개정이 호스피스 병동 부족 문제도 해결할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국내 호스피스 병동은 늘어나는 환자 수를 감당하지 못해 환자 수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 호스피스센터가 발표한 국내 호스피스 전문기관 지정 현황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은 총 86개소, 병동은 총 1,405개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2016년 조사된 기관 총수(77개소)와 병동 수(1,293개)보다 늘어난 수치이다. 하지만 연 신규 환자가 2016년 13,662명에서 2020년 18,925명으로 약 38% 증가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한다면 그만큼 부족했던 호스피스 병실 확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죽음은 단정 지을 수 없다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의료계가 가장 강하게 개정법률안을 비판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자칫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는 법안이 발의되자 조력 존엄사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에 존엄한 돌봄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가 뒷받침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또한 호스피스 인프라 구축에 대한 노력도 없이 존엄사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현행법의 부실함도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16조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 따르면 환자의 임종 과정 여부를 담당 의사의 판단에 대부분 의지하고 있다. 세밀한 가이드라인도 없이 개인의 판단으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며, 이를 허용한다면 환자가 호전될 일말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환자에게 선택을 종용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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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병실에 있는 환자. 출처-셔터스 |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호스피스의 날’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기념하고 사회적 지지와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지정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본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인생의 마지막을 소중하게 채워나갈 기회일 수도, 무의미하게 명을 이어 나가고 있는 지옥일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면 그들에게 ‘조력 존엄사법’은 새로운 선택이자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윤리적 논란 소지가 큰 법안인 만큼 먼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해 본 뒤에 존엄사를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경수 (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