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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우는 행위에 대해서, <죽은 자의 집 청소>

기사승인 2022.03.10  13: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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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평행선 위에서 죽음을 향해 매일 나아가고 있다. 필자는 친구들과 죽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만약 죽음이 가까워져 스스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죽을지 꽤 구체적으로 토론했었다.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숨이 끊어진 후에 거주하던 공간을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망자가 남긴 흔적을 지워가는 조금 특별한 청소부의 이야기이다. 저자가 청소 일을 하면서 맞닥뜨린 상황, 현장에 대한 묘사나 청소 방법이 언급되기도 한다. 책의 전반부만 읽으면 생생히 묘사된 현장과 힘든 직업을 가진 저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죽음의 현장을 보는 청소부가 아니라 청소라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사진1)=<죽은 자의 집 청소>/출처: 직접촬영

 

숨이 끊어진 곳에는

“침대 매트리스엔 검은색 눈사람처럼 맞붙은 원형 핏자국 두 개가 선명하고, 갈색 스타킹을 벗어놓은 것처럼 길쭉한 피부 조직이 오그라든 채 들러붙어 있다.” -p.23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 대부분은 죽음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현장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생을 마감한 곳에 생명체가 이를 양분 삼아 살아가기도 하기 때문에 비극적인 기분도 들었다. 저자 자신도 생을 마감한 현장의 상황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재작년 필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만류로 청소 현장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생을 마감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관례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심오한 주제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사례처럼 고인의 집을 가족이 정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흔적을 지우는 일

지난주 집 청소를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선반에 묻은 염색약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휴지에 물을 묻혀 닦아도 달라진 게 없어 전용 청소용품을 사용해서 지워야 했다. 인덕션에 붙은 끈적한 시럽은 잘 닦이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추천한 방법으로 온 힘을 다해서 지워나가야 했다. 냄새를 지우는 것은 더 어렵다. 커피숍을 다녀오면 머리카락에 밴 커피 냄새, 고깃집에 다녀오면 온몸에 밴 연기 냄새를 지우기 위해 탈취제를 뿌리거나 세탁을 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평생 다양한 흔적을 지워간다. 이와 같은 일상의 흔적도 어떻게 지워야 하나 고민하는 필자와 달리 저자는 현장의 상황에 따라 알맞은 방법을 시도한다. 우선 저자는 비가 내리는 날을 피하고 싶어 한다.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므로 일을 하는 상황에서 비 자체는 성가실 뿐만 아니라 고약한 냄새를 퍼지게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코가 더 예민해지고 냄새가 더 잘 나기 때문에 이웃의 원성을 사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생을 마감한 곳에는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저자는 책에서 ‘죽은 사람은 냄새로 자기소개를 대신한다’라고 표현했다. 후각은 시각보다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현장에 들어간 저자는 먼저 비극적인 냄새에 압도당한다. 이후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 순간 후각의 고통은 사라지고 시각적 고통을 경험한다. 생을 마감한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면 저자는 이곳에서 거주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숨이 끊어졌는지 대강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더 극심한 고통에 순위를 내어주고 잠잠해진다. 저자는 자리의 주인이 남기고 간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지워나가며 떠나간 이를 위로한다. 현장을 치우고 냄새까지 지우면 비로소 일은 끝이 난다.

 

봉투에 담긴 한 사람의 사연과 인생

하루에 나온 쓰레기를 담은 종량제 봉투를 열어보면 그 사람이 오늘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다. 무얼 먹었고, 어떤 걸 썼으며, 얼마만큼 사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장에 도착해 종류별로 물품을 분류해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포대 자루에 책을 담고, 페트병 내용물을 비워 구기고, 이불과 옷가지를 말아 넣고, 매트리스의 스프링을 끊어내는 등 각각 알맞은 방법에 따라 처리한다. 그러고 봉투를 모아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면서 본인이 사용했던 것을 본인이 처리한다. 반면 저자는 본인이 처리하기 힘든 경우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저자는 고인이 남긴 물건들을 정리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를 추억하기도 위로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p. 101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현장을 보기 때문에 스스로 좋을 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며 볼 뿐이지 이곳의 주인에 대한 어떤 진실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현장에서 스스로 느끼고 많은 것을 얻어갔다. 현장에서 떠오른 다양한 질문을 자신에게 묻고, 해결한다. 저자가 하는 청소라는 행위는 단순히 더러운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 생을 마감한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해주고 그가 남긴 것들을 한데 모아 인생의 매듭을 지어주는 뿌듯한 일이 된다.

 

청소는 나를 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평소 우울감에 시달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를 추천하고 싶다. 그 화장실이 더럽고 끔찍할수록 더 좋다.” -p.221

“생각해 보면 참 지저분하고 냄새가 고약한 꿈이다.. (중략) 원래 이 집에 있던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이 함께 사라진 듯하다.” -p.67

 

저자는 ‘인간의 마음도 더러운 화장실 청소처럼 얼마간 곤욕을 치르고 나면 잠시나마 너그러워지고 밝아진다’라고 한다. 더러운 흔적을 지우면 비우는 동시에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 등의 감정이 들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남을 도울 수 있기에 더 뿌듯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청소하는 행위와 그 결과만으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성취감, 행복, 안쓰러움, 허탈, 뿌듯함, 웃음 등 매번 다르다. 끔찍하게 더러운 곳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어지른 것, 남겨놓은 것을 치우고 청소하는 행위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와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필자는 와인병의 먼지를 닦아내면서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을 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다 보면 본연의 매력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던 차에, 손님에게 선택받아 구매되어 가는 와인을 보면서 선택받으려 준비하는 시간도 어떤 목표를 갖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혹자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능동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후회 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움에 도전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반복해서 잘하게 하는 것,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나의 인생을 사는 것. 이런 다양한 능동적 태도들에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가 보여준 삶의 뒤편에 남는 것을 처리하는 ‘청소’를 추가하면 어떨까.

죽음의 언저리에 있는 현장에서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청소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죽는 순간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수도꼭지를 닮았다’라고 한다.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하는 수도꼭지처럼 자신도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닮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죽은 후 세상에 남기고 가는 흔적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지울 수 있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아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 제 생각과 모습을 돌아보라는 제안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변서연(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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