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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기사승인 2021.05.02  10: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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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대한민국 영화계의 경사로 한껏 떠들썩한 요즘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눈부신 쾌거를 이루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정이삭 감독의 독립영화 ‘미나리’가 영화사에 또 한 번의 큰 획을 그었다. 이민 1세대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유수의 시상식 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이목을 끌었다. 그러던 중 ‘순자 할머니’ 역으로 열연한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이은 기록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시상자로 나온 브래드 피트에게 무슨 향기가 나던가요?”

“그 사람 냄새 안 맡았어요. 난 개가 아니거든요.”

 

국내외의 언론은 윤 배우의 수상 소감과 인터뷰 내용을 집중 조명했다. 아무렴, 당당하고 재치 있는 애티튜드가 트로피보다 빛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올해 나이 74세, 데뷔 55년 차의 입담을 거슬러 올라가니 “최고의 연기는 돈 필요할 때 나온다”라는 ‘웃픈’ 명언이 있다. 평소 “먹고살려고 연기했다” 말해온 그녀는 시상식에서도 “일하러 나가란 두 아들 덕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싱글맘의 심정을 솔직하게 밝혀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다.

 

“주목받은 이유 같은 건 평론가한테 물어보라. 향후 계획은 없다. 살던 대로 살겠다. 오스카상을 탔다고 해서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것은 아니다.”

 

여느 달변가의 유창함보다 누군가의 꾸밈없는 소신에 마음이 동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체면 차리지 않는 윤 배우의 말을 더욱 귀담아듣는다. 그녀가 오늘날까지 현역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아카데미의 영광을 누리게 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출처: pixabay

 

세계적 기업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수장을 역임한 잭 웰치는 어린 시절 어눌한 말로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괜찮아. 네 말이 느린 것이 아니라 네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른 거야.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말에 생각의 깊이와 진심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언어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준 그녀의 한 마디는 훗날의 웰치를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언변과 긴 문장이 아닌 말의 진정성이다.

 

‘말이 나를 규정한다’라고 할 만큼 수많은 언어학자들이 오랜 시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철학자 니체는 “꿀벌은 밀랍으로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개념으로 집을 짓고 산다”라고 했으며, 하이데거는 또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다. 어떤 언어로 집을 짓느냐에 따라 그 자신의 생각과 삶, 즉 존재마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언격(言格)이 사람의 품격을 좌우한다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사람을 인종과 젠더, 성 정체성 등으로 구분 짓지 말아야 합니다. 다양한 색을 담아야죠.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는걸요.” - 아카데미 온라인 기자 간담회 중, 윤여정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러 인종, 연령을 배경으로 삶의 애환을 녹여낸 작품과 수상자 분포가 돋보인다. 아시아 영화의 약진과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는 분명 주목할 만한 행보다. 그러나 이는 동전의 양면 마냥 세계 곳곳의 아시안 혐오 범죄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온다.

 

말은 생각의 불씨를 당긴다. 윤 배우의 주옥같은 ‘말말말’은 사회의 뜨거운 감자를 환기했다. 언어의 품격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대목이다. 말에 어떤 철학을 담아내는지에 따라 의미 없는 관념도 누군가의 신념이 된다. 변화를 추구하고 이끌어가는 자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고유한 생각을 표현하려는 이유다.

 

입구(口)자가 모인 품격(品格)

 

출처: pixabay

 

“대본을 읽은 세월이 너무 오래됐으니까 대본을 딱 보면 안다. 너무 순수하고 너무 진짜 얘기였다. 대단한 기교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썼다.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다. 감독을 보고 '요새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도 결국 ‘통(通)할 것은 통한다’는 말을 믿어보려 한다. 지나온 삶은 짧고 나의 경험도 얄팍하기 그지없으나 산전수전 다 겪은 대배우부터 진심(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을 말하지 않는가. 나는 ‘없는 쥐뿔도 있는 척’ 하는 말재주를 가지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더 번지르르 말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앙꼬 없는 찐빵을 붙잡고 노력한 시간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나는 고상한 사람보다 품격 있는 사람이 좋다.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그의 언어에 주목하는 이유다. 말의 쓸모를 극대화하고 싶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언어의 품격부터 높여야 한다.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는, 뻔하지 않은 진심을 담은 말에 감히 어느 누가 침을 뱉겠는가. 속 빈 강정보다 꽉 찬 알맹이가 기꺼이 환대 받는 ‘품격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강지은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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