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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배우다 : 로마법 수업

기사승인 2021.05.01  22: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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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지역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유럽,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 지역과 이집트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제국으로 발전한 로마는 오늘날 인류의 사회문화적 틀을 형성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중 특히 로마가 자그마한 도시에서 제국이 되는 과정 속에서 그 기틀을 마련하며 함께 발전한 로마법은 인류법의 기원, 원천으로 명명되고 있다. 독일 역사가 랑케는 고대의 모든 역사는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는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처럼 로마의 역사, 그리고 로마 사회가 겪었던 문제는 오늘날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듯하다. 그리하여 이 책‘로마법 수업’을 통해 로마 사회가 겪었던 문제,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비교해보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 지혜를 얻고자 한다.

 

 

로마법 수업 책 표지 / 출처 : 직접촬영

 

사람과 사람의 구분 : “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인간의 인격, 그리고 개별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페르소나(persona)’는 로마법에서 법률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점에 비추어 우리는 로마법이 인간의 평등함, 다양성을 인정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로마법은 자연인과 노예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유인이거나 노예다. (Omnes homines aut liberi sunt aut serci)”

 

“노예제는 마치 죽음과 같다.” 혹은 “노예제는 만민법 상의 제도로서 어떤 자가 타인의 소유권에 속하는 것으로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라고 인정하기도 하지만, 그 수준에서 그칠 뿐 다른 어떤 자연인과 노예의 구분을 없애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고대 로마에서 “당신은 노예인가, 자유인인가?”라는 한 줄의 질문은 중요한 물음이었다. “나는 노예요.”“나는 자유인이오” 답변 한마디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구분 지어졌기 때문이다.

 

인격이기 이전에 소유하고 거래되는 재산으로 여겨진 노예는 법률상 매매와 증여, 상속과 유증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인으로 태어나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자신이 우월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 노예는 자신의 열등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로마의 운명론적 관점은 사람 사이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된다.

 

오늘날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구분’의 늪에서 빠져나오진 못하고 있다. “당신은 노예요, 자유인이오?”라는 질문 대신에 “당신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당신은 전임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당신은 서울캠퍼스 학생인가, 지방 캠퍼스 학생인가?”와 같은 이분법적 질문은 여전히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신분제만 없어졌다 뿐이지 사람을 대하는 조건과 양상은 크게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만인에게 모든 기회와 도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차단되어 있는 이 사회가 어쩌면 고대 로마의 계급제와 닮아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범죄와 처벌 : 자유의 박탈

 

신분을 뜻하는 라틴어 ‘스타투스(status)’는 스타투오(statuo)의 과거분사가 명사화된 것으로, ‘고정자세, 서 있는 자세’를 의미했다. 로마인에게 있어 스타투스는 자유인 혹은 노예 둘 중 하나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로마에서 법적으로 보호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유한 특권을 누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보호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노예는 포함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지위의 개인은 첫 번째 특권으로 노예와 구별되는 자유인의 지위를 가졌다. 두 번째로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듯 특권에 대한 책임 역시 존재한다. 특권을 누리는 자유인들은 병역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져야 했다. 특권에 따르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시 이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벌에 처함으로써 그 죗값을 치르도록 했다. 물과 불의 사용을 끊는다는 의미의 수화불통은 오늘날의 의미로 치자면 수도와 전기를 끊는 벌에 해당했다. 물과 불을 끊는 것이 큰 벌인지 갸우뚱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에서 물과 불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여 일상생활을 못 하게 하는 것은 곧 추방과 다름없었다. 수화불통의 처분이 내려지기 전 마을을 이탈한 자가 수화불통 처분을 받고 마을에 돌아올 경우 이를 법외자로 취급하여 이 사람을 살해하는 것도 허용되는, 사실상 사형에 가까운 처벌이었다. 수화불통 이외에도 전 재산을 몰수하고 시민권을 박탈한 뒤 특정 장소에 유폐되는 형벌인 강제추방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강제추방 처분을 당하는 경우는 ‘주로 재판관이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금전을 수수하고 판결을 조작하는 경우, 그리고 성욕이나 연정을 일으키는 사랑의 묘약이나 낙태약을 제공하거나 사용한 경우’에 이러한 강제추방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현재로 돌아와서 강제추방 처분을 당하는 죄목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을 때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각종 뇌물수수 의혹, 유명 연예인들의 성폭행 모의 및 불법 촬영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일들과 연관 지어지는 듯하다. 로마에서 이러한 범죄는 강제추방형을 내릴 정도의 중범죄로 취급되었다. 신분 구조가 자유인과 노예로 명확하게 구분되었고 법적으로 보호받는 자유인은 특권계급에 해당했음에도 오히려 이들에게 더 높은 행동 기준이 요구되었다. 재판의 판결을 조작하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성과 관련한 비겁한 짓을 저지른 자들은 외딴섬에 고립시키는 것이 로마의 정의였다. 이에 비추었을 때 우리는 로마에서 중형벌을 받는 죄목과 비슷한 사건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이러한 범죄에 대해 어떤 법을 적용해서 얼마만큼의 형벌을 내리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성, 그리고 사회문제

 

로마법에서 ‘여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단어로는 ‘페미나(femina)’, ‘물리에르(mulier)’, ‘욱소르(uxor)’ 등이 있다. 여기서 언급된 femina는 오늘날 치열한 논쟁의 장을 열고 있는 페미니즘(feminism)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 사회는 번영을 거듭했지만, 여성의 권리만큼은 더디게 발전했다. 남성 중심 세계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은 그저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되는 대상이라고만 인식되었을 뿐이다.

 

“여자는 모든 시민적, 공적 직무에서 격리된다.”- 울피아누스 -

 

여성은 소송을 제기하거나 타인을 위해 변론할 자격이 없었다. 노예에게 상소권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로마 사회에서 여성의 법적 지위가 노예와 같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여성이 후견인이 될 수도, 가문의 가장이 될 수도 없었던 여성의 지위와 기원전 169년 보코니우스 법은 여성의 유언할 자격마저 제한했지만 로마는 여성에 대한 판결만은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성에 대한 판결은 좀 더 가벼워야 한다. 그 이유는 여성은 성의 연약함 때문에 덜 흉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지 여성의 폭력성과 공격성은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물리적인 힘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의해 다소 호의적인 태도가 드러났다는 점은 고대 로마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인류법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로마법에서도 여성들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한 한편, 로마 사회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로마인보다 먼저 이탈리아반도에 자리 잡고 있었던 에트루리아인들의 여성에 대한 태도는 로마와 사뭇 달랐다. 에트루리아 가정 내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았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동지로 여기며 상호 존중했다. 여성이 가사를 도맡아 하며 남편의 사회생활을 뒷바라지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독특한 권리를 지닌 인격체로 대접받는다.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양친의 이름을 모두 반영하는 문화가 존재했던 점과 가족묘에서 아내의 무덤이 더 크고 좋은 자리에 있었던 점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에트루리아 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는 기원전 396년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정복당하면서부터 빛바래기 시작한다. 로마가 에트루리아를 점령한 이후 여성의 권리가 에트루리아 사회만큼 회복하기까지 인류는 수십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수십 세기가 지난 오늘날, 관심을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SNS 상에 여성 대상 성범죄를 예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상황 속 여성의 권리가 에트루리아 사회만큼 회복되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고민해 보아야 한다.

 

로마를 통해 바라본 오늘날 우리 사회

 

로마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편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이미 과거에 그 틀이 형성된 것들일지도 모른다. 로마의 사회상을 그린 자료를 통해 고대 로마에서 조망권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다. 과거 로마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다층 공동주택 양식인 ‘인술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인술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옆 구역 인술라와의 조망권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오늘날 건물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조망권과 일조권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한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구조만 복잡해졌을 뿐 이미 문제에 대한 기틀은 과거에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과거에서 흘러온 시간 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어쩌면 과거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우리의 삶과 연속성을 갖는 과거의 그 시점이 어딘지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먼 과거인 로마의 법 속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정원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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