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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

기사승인 2021.04.30  2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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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은 작은 변수가 존재하는 하루가 반복되며 비슷한 생활이 변주처럼 이어진다. 2021년, 나의 일상 속 변수들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고 그 반복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었다. 그 사이클을 끊기 위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했고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던 경험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는 모험소설 속 주인공이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겪고, 극복하고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통해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떠나기 전, 채비를 하는 주인공과 같이 여행을 가기 전 탑승권을 구입하고 숙소를 예약하며 여행을 준비한다. 여행 중 만난 좋은 인연은 모험기 속 조력자 같고, 날씨가 맑으면 맑은대로, 비가 오면 극복할 도전인 듯이 즐거워진다.

 

신분증과 탑승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를 갈 때 꼭 필요한 준비물이 2개다. 하나는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 또는 여권)이며 다른 하나는 탑승권이다. 탑승권은 미리 예매를 했다면 공항에서 체크인을 한 후에 받는다. 사실상 가져가야 할 것은 신분증 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신분증을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중, 책상 위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나다.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도움을 건넨 것은 뜻 밖에도 옆줄에서 기다리던 여행객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본 후, 공항직원에게 상황을 알렸고 덕분에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항공사 직원과 함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해 보안팔찌를 받은 후 탑승하면 된다. 이 방법은 탑승마감까지 적어도 30분은 있어야 가능하다. 신분증이 없음을 35분 전에 깨달은 나는 만약 그 여행객의 친절이 없었다면, 당황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가 생겼을 것이다.

 

놀랍게도 비행기에 탑승하고 보니, 옆자리에 그 여행객이 앉아있었다. 감사인사와 짧은 자기소개를 주고 받은 뒤, 제주도의 어디로 향하냐는 질문에 서로의 대답은 같았다. 제주도의 서쪽, 작은 해변인 협재로 가는 것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우리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고, 혼자 여행을 하는 두 뚜벅이는 협재해수욕장까지 같이 택시를 타고가 저녁을 함께 했다.

 

(사진1) 협재해수욕장 / 출처: 직접촬영

섬 속 섬, 비양도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15분을 가면 비양도에 도착한다. 비양도는 인구 약 17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해안로 길이는 2.5km로 잘 정비되어 있다. 비양도에 도착해 조금 걸으면 나오는 카페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데, 이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도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지나가다 가만히 서서 잠깐씩 바라보게 되는 풍경 탓에 한 바퀴 도는데 40분은 걸린 것 같다.

 

비양도는 해안과 오름이 가까워 바다와 숲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면 이름 모를 풀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돌담이 길게 이어진 산책로와 그 산책로를 따라 가득 핀 꽃, 그리고 뒤에 펼쳐진 오름은 한 화장품 회사의 화산송이 제품 광고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 장면과 함께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들려오는 새의 울음소리는 누가 소리를 녹음해서 튼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비현실적이다.

 

(사진 2) 비양도 산책로 / 출처: 직접촬영

 

눈길을 돌려 섬의 바깥을 보면 시야가 탁 트이며 높은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가 보인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물보라가 생기는 것을 보면 멍하니 생각을 잊었다가 다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깊은 고민이 존재하는 일상을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났는데, 다시 생각에 잠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걱정들이 있다. 그러면 고민들을 떨치기 위해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가끔씩 정답이 되지는 못해도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3) 비양도의 바다 / 출처: 직접촬영

 

금오름

 

아침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오름에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하던 중, 그냥 가기로 결정했다. 평소의 나는 자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이니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금오름은 검은 오름이라고도 불리는데 오름의 흙 대부분이 까맣기 때문이다. 오름의 초입에는 숲이 있다. 곧게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며 가지를 뻗고 있는데, 이 길을 걷다 보면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아이유의 리메이크곡 ‘비밀의 정원’이 떠오른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습한 분위기는 나무들을 더 푸르게 만들어주는 것 같고, 모든 색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사진 4) 금오름의 숲 / 출처: 직접촬영

 

오르막을 힘차게 걷다보면 숲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제주도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비양도도 보인다. 정상에서는 구름이 내 옆에 있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정상에서 내려와 연못 가까이로 간다. 금오름 정상의 분화구는 독특하게 가운데 물이 고인 연못, 금악담(화구호)이 있다.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데 비가 오면 금악담이 생긴다. 금악담에는 소원을 담아 쌓아놓은 돌탑들이 많고, 그 돌탑 사이로 핀 작은 꽃들이 아름답다.

 

(사진 5) 금악담과 돌탑 / 출처: 직접촬영

 

금오름의 일몰은 아름답다고 소문나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일몰 시간에 맞추어 금오름을 찾는다. 내가 금오름에 간 날은 날씨가 흐려 일몰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금오름의 모든 길을 구경하고 내려와 택시를 기다릴 때 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운 좋게 타이밍을 잘 맞췄다는 생각을 하며 저녁을 먹으러 떠났다.

 

돌담과 사랑초

 

여행은 우리를 집중시키며 사소한 일들을 사소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현지인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그들에겐 일상인 자잘한 부분을 우리는 유심히 살핀다. 현지인에게는 일상일 곳에 카메라를 가져다가 사진을 찍고, 여행에서 느낀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자 애쓴다.

 

제주도 협재에 도착해 해변에서 숙소까지 매일 산책을 하며 산책길에 있는 제주도의 돌담 사진을 찍고, 그 밑에 핀 사랑초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 갈 때는 밝은 햇살을 담은 돌담과 청보리밭, 소국과 사랑초를 감상했다. 비가 온 다음 날, 빗방울을 머금은 꽃잎과 이파리를 유심히 살폈고, 달이 뜬 밤에는 가로등이 비추는 그림자 속 돌담을 담았다.

 

(사진 6)돌담 / 출처: 직접촬영

 

제주도와 내 일상 풍경 중 가장 큰 차이는 돌담의 유무이다. 하지만 꽃과 나무, 해와 달, 아침의 이슬은 서울에도 있다. 이전이었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시야에서 이제는 꽃을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여행은 그렇게 생각지도 않던 것을 얻게 되기도 하고 가끔은 기대와 다른 풍경에 실망하기도 한다. 공항에서 만났던 옆자리 승객과의 저녁은 다시 보지 않을 사이라 할 수 있던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모르는 사이라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던 다소 직설적인 조언은 고민을 덮어놓고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블로그 후기를 통해 알았던 비양도는 쓰레기와 파리가 많은 섬이었다. 그래도 배를 타고 싶다는 마음에 갔던 곳은 뜻밖에도 탁 트인 푸른 바다와 풀꽃들이 있는 곳이었다. 길가에 핀 꽃을 보지도 못했던 몇 주 전과 달리,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 일상에 쌓였던 고민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고민들을 해결할 힘이 소진된 것 같았고 비록 기간이 정해져있는 탈출일지라도,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존버: 존중하며 버티기’라는 말을 많이 쓰는 지금, 나는 버틸 힘이 없어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버틸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끔 탈출이 필요하다. 나는 탈출을 했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어와 변수를 버티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상의 변주를 살아가다보면 평범한 생활 속 행복한 날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여행의 기억들은 그 후의 일상에 미묘한 영향을 끼친다. 아마 시간이 지나 제주도 여행을 돌아보면 그 기억을 통해 느끼는 것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그렇다.

 

정홍주 지속가능저널 인턴 기자  yess@live.com

정홍주 지속가능저널 인턴 기자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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