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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왈로우>,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여성이 삼켜야 했던 것들

기사승인 2021.04.27  19: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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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헤일리 베넷 役)의 하루는 남편 리처드로 시작해 그로 끝난다. 리처드의 출근을 위해 옷을 다려놓고 리처드와 함께 사는 집을 청소하다가 리처드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온통 유리로 된 크고 화려한 집에 홀로 남아 남편의 퇴근을 기다릴 때, 집안일을 제외하고 헌터가 하는 일은 딱히 없다. 그마저도 멍하니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한때 꿈꿨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자신을 상상해보거나 바깥이 어둑해질 때까지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뿐이다.

 

어느날 헌터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뻐하는 남편과 그의 부모님 사이에서 헌터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남편의 가족은 “미래의 (남편 회사의) CEO”를 임신한 헌터가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을 기다리며 청소하던 중, 헌터는 바닥에 떨어진 구슬을 한참 쳐다보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입에 넣고 삼켜버린다. 그날 밤,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낸 헌터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구슬로 시작한 헌터의 이식(異食)은 압정, 건전지, 못 등 점차 위험하고 대범한 물건을 삼키는 것으로 계속된다.

 

영화 <스왈로우> / 네이버 영화

 

그녀가 ‘진짜’ 삼킨 것

 

영화 <스왈로우>는 제목처럼 ‘삼키는(swallow)’ 행위에 중독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삶’을 말한다. 주인공 헌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규정한 여성성을 강요받는 여성이다. 부유한 집에 ‘시집 간’ 헌터는 성공한 남성을 완벽히 ‘내조하는’ 현명한 ‘아내’의 역할과 부잣집 ‘시댁’과 어울리는 고상한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쁘다.

 

헌터의 결혼 생활은 마치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의 삶과 같다. 남편(과 그의 부모)에 종속된 채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갖추려 애쓰면서, 헌터는 지독한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낀다. 그런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알려고 하지도 않는) 남편은 앵무새처럼 사랑을 속삭이지만 헌터에겐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한다. 나아가 임신한 아이는 남편과 헌터의 애정의 결실이 아닌, 남편과 그의 부모가 관리해야 할 사업 아이템이자 미래의 가부장으로 여겨진다. 분명 헌터가 임신했음에도 아이는 남편과 그의 부모의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생활에서 헌터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없다.

 

따라서 헌터가 처음 구슬을 삼킨 순간 보였던 뿌듯한 표정은 단순히 그가 정말로 이상한 물건을 먹는 행위를 좋아해서, 혹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서 지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물건을 삼키는 행위는 헌터에겐 가장 자기 자신다운 행위가 된다. 삼킬 물건을 스스로 택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삼켜내는 과정은 헌터에겐 새로운 ‘도전’이자 그가 그동안 느낀 답답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탈출구’이다. 구슬에서 시작해 압정, 건전지 등 점점 더 위험한 물건을 삼킬수록 헌터는 자신감을 얻는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잘못을 하려고 해도 못 할” 인형이 아닌, 스스로 쾌락을 찾아가는 사냥꾼(hunter)인 것이다.

 

영화 <스왈로우> / 직접 캡쳐

 

그러나 헌터의 이식(異食) 행위를 알게 된 남편과 그의 부모는 그를 정신이상자 취급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라고 소리치는 남편은 헌터가 왜 물건을 삼키는지, 물건을 삼킬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말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저 그 행위를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을 걱정하면서 (“돈은 또 내가 내지”) “종일 집에 앉아서 스크랩북이나 만들고 빌어먹을 커튼이나 고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헌터를 비난한다. 남편의 부모 역시 약물치료를 언급하며 병원비를 대는 만큼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헌터를 감시할 가사도우미를 붙일 뿐이다.

 

헌터의 이식(異食) 행위에 대한 남편과 그의 부모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헌터가 그동안 ‘진짜’로 삼킨 것이 무엇이었는지 짐작게 한다. 그것은 “빌어먹을 잡동사니들”이 아니라, 남성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아름다움, 수동성, 맹목적 모성과 같은 관념들이다. 홀로 집에 남아 멍하니 TV나 창밖을 볼 때 종종 보이던 무언가 참느라 울컥한 듯, 혹은 화가 난 듯 작게 일그러진 표정은 바로 헌터가 그러한 것들을 삼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반면 압정, 건전지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물건을 삼킬 때 헌터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하며 어딘가 만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두 표정의 대비는 분명 무엇이 진정으로 헌터를 괴롭게 했는지 보여주지만, 남편과 그의 부모(가부장제 사회)는 헌터의(여성의) 진짜 표정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기까지

 

감독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가 말했듯, 영화 <스왈로우>에서 헌터는 이식(異食) 행위를 계기로 자신을 둘러싼 억압적 환경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회복한다.1 그 과정에서 헌터가 스스로 택한 것은 임신 중단이다.

 

영화 <스왈로우> / 직접 캡쳐

 

헌터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고 그때 헌터를 임신했다. 어머니를 가해한 헌터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수감되어 형을 살았다. 헌터는 어머니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자신이 태어났는지, 생물학적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이며 사는 곳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 모조리 알고 있다. 심지어 생물학적 아버지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왜 어머니가 임신 중단을 하지 않았는지 묻는 심리상담사에게 헌터는 어머니가 보수적 종교인이라서 종교적 이유로 임신 중단을 하지 않았다고 답하며, “저희 가족은 낙태 같은 건 생각도 못 해요.”라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헌터는 태연하게 “이겨냈죠”라고 말하지만, 헌터는 그러한 출생 과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어머니가 불가피하게 자신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태어났다’는 사실에 오랜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 온 헌터가 자신의 몸에 곧 태어날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기쁨과 설렘으로만 가득하지 않다. 화장실에서 홀로 임신 테스트기를 통해 임신을 확인한 순간, 헌터의 얼굴은 놀랍도록 무표정하다. 마냥 신이 난 남편이 그의 부모에게 소식을 알리는 동안 소파에 앉아 있는 헌터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이것저것 급히 결정”한 것 중 하나였던 임신은 헌터에게 또 다시 삼켜내야 할 새로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임신에 대한 헌터의 태도는 미디어가 연출하는 임신부의 모습과 대비된다. 흔히 임신한 여성은 자신의 임신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태어날 아이를 사랑하는, ‘준비된 엄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임신은 여성의 몸에 무엇보다 큰 변화를 일으키며, 여성은 자신의 몸이지만 타인이 점령한 것 같은 몸의 변화를 홀로 견디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까지 갖추길 강요받는다. 따라서 헌터가 느끼는 두려움은, 자신을 오랫동안 구속했던 죄책감이 구체적 현실에서 실제적 공포로 구현된 것이자 임신이라는 ‘사건’이 여성에게 불러오는 생경하고 기이한 감각에 대한 여성의 ‘진짜’ 반응이다.

 

한편, 헌터는 남편이 자신의 출생 과정을 알게 되자 불안에 떤다. 하고 있던 화단 꾸미기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얼굴과 옷에 흙이 범벅이 되도록 머리를 헝클인다. 이윽고 남편이 외출하자 헌터는 먼지 쌓인 침대 밑에 들어가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한다. 그때 헌터의 곁에서 “여기선 안전해요”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이는 다름 아닌 그를 감시하기 위해 붙여 준 가사도우미 루아이다.

 

영화 <스왈로우> / 직접 캡쳐
영화 <스왈로우> / 직접 캡쳐

 

영화에서 루아이와 헌터의 관계는 남편과 헌터의 관계보다 입체적이다. 고향 시리아의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와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루아이는 헌터를 만난 첫날 “총알이 날아올 땐 그런 데 신경 쓸 시간이 없”다며 헌터의 이식증을 이해하려 하지 않지만, 앞서 언급한 장면에선 헐떡이는 헌터의 어깨를 다독인다. 나아가 헌터가 또 한 번 위험한 물건을 삼켜 남편과 그의 부모가 헌터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할 때, 몰래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회적 여성상을 강요받는 여성의 고통과 임신이 여성에게 일으키는 혼란스러움을 전쟁터의 고통과 동일시할 순 없지만, 헌터에 대한 루아이의 공감과 연대는 헌터의 여정에 큰 도움닫기로 작용한다.

 

헌터는 너무도 크고 화려하지만 어느 것 하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어느 곳 하나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던 집(남편과 그의 부모)을 벗어나 홀로 길을 나선다. 모텔과 거리를 배회하다 도착한 곳은 생물학적 아버지 어윈이 사는 곳이다. 마침 생일파티가 이뤄지고 있는 그곳에 헌터는 손님인 척 들어가고 마침내 생물학적 아버지와 대면한다. 자신이 부끄럽냐는 헌터의 질문에 헌터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제가 한 짓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헌터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묻는다. “내가 당신을 닮았나요?” 그는 답한다. “당신은 내가 아니에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헌터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다.

 

이윽고 전환된 장면에서 헌터는 편한 옷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형 몰에서 패스트푸드와 함께 헌터가 마지막으로 삼키는, 음식이 아닌 것은 네 개의 알약, 다시 말해 임신 중단을 위한 약이다. 공중 화장실에서 임신 중단이 이뤄졌음을 확인한 헌터는 거울을 보며 슬쩍 미소 짓곤 길을 나선다. 드디어 헌터는 자신의 몸과 존엄을 통제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탈피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은 것이다.

 

헌터가 떠난 화장실에 머무른 카메라는 화장실을 오가는 여성들을 한참 동안 담는다. 다양한 모습을 한 여성들이 화장실을 이용한다. 그중엔 헌터처럼 자신을 제약하는 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임신 중단을 택한 이도 있을 것이다.

 

영화 <스왈로우> / 직접 캡쳐

 

이제 헌터의 하루는 헌터 자신이 택한 것들로만 시작해 끝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결혼을 하고 나아가 아이를 낳더라도, 더 이상 헌터는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 며느리로 남지 않을 것이다. 헌터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든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이 그러할 수 있듯- 그저 헌터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1“Even though the Pica is dangerous, it also sort of serves as a catalyst that allows her to break out of this controlling environment and discover her true self, and what she really wants.”

kat Hughes, “Interview: Director Carlo Mirabella-Davis Talks ‘Swallow’”, <TheHollywoodNews>, 2020.05.17.

 

 

 

 

 

노수빈 지속가능저널 인턴 기자 yess@live.com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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