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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갈 곳 잃은 장애인들

기사승인 2021.04.24  20: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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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속 잔존하는 차별들

 

신분제도가 폐지되고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사상이 어느새 보편화 되었음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차별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색인종,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이다. 그중에서도 이번 기사를 통해 중점적으로 바라볼 이슈는 장애인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인구 중 장애인은 약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90% 이상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특히 장애인 인구 중에서는 지체장애인이 가장 많은 숫자로 나타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원인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1 지체장애인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보더라도 한눈에 알아보기 쉽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들의 사회적 어려움이 가장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나,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울퉁불퉁한 인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면 지체장애인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부딪혀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앞에서는 지체장애인만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지만, 이러한 사례는 비단 그들에게만 머물러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구 비율로만 바라보면 장애인은 엄연한 소수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과 어려움은 그늘 뒤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서 취업 등의 시장에서도 비장애인을 가장 우선시하는 경향은 무시하지 못한다. 이는 결국 장애인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비장애인보다 열등한 존재이므로 그들과의 관계 맺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자리 잡은 편견이다. 단순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걸 넘어서, 성급히 동정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역시 그들이 ‘불쌍한 존재’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내포되어 있으므로 나오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식이 어째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을 단순히 격리, 보호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일상을 보낼 권리가 있다는 취지를 가진 노멀라이제이션 운동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이 운동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장애인의 인권 신장의 퇴보만을 가져올 뿐, 그 이상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짚어낸다. 노멀라이제이션 운동의 핵심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그들에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돌려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시설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가정에서 살아가고, 취직을 하고,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지도록 하는 운동이다. 노멀라이제이션 운동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장애인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편입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장애인 편의시설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단순히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불리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 사회에서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아서, 억지로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고자 시도하다 보니 각종 불협화음이 울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어른이 어린아이의 옷을 입어보겠다며 몸을 욱여넣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을 사회에 성공적으로 녹아들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준비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장애인이 불편을 겪는 정도는 비교적 약해질 것이며, 장애인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2006년 UN장애인권리협약 제1조에 따르면 ‘이 협약의 목적은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 보호 및 보장하고, 장애인의 천부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즉,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권과 생활을 누릴 권리가 보장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다수의 편의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많은 영역에서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취업에 있어서 대부분의 면접관은 장애인을 최종 선발하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며, 채용한다고 하더라도 장애 유형에 따라서 조금씩 편차가 있으나 장애인의 임금이 비장애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경우 굳이 소비할 필요가 없는 의료비나 보조도구 등으로 더욱 많은 지출 형태가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수입은 적고 지출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됨에 따라서 장애인은 자기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비장애인에 비해 많으며, 실제로도 기본적인 생활조차 누리기 어려워하는 장애인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바로 장애유형별 거주시설이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과 같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다. 이런 시설들에서는 장애인에게 주거공간이나 갖가지 서비스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의 전부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장애인을 ‘거주시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몰아넣는 것은 소수자인 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바로 장애인이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자신의 장애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을 최소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노멀라이제이션 운동’과도 일맥상통한다.

 

가장 흔히 떠오르는 엘리베이터나 점자책 같은 요소들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근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면서도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또,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는 자연스럽지만 장애인에게는 불편한 요소들은 무엇일까?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 신호기

음향 신호기. 출처:직접 촬영

 

이 사진에 있는 붉은 버튼은 ‘시각장애인용 음향 신호기’이다. 2호선 강변역 부근에 있는 횡단보도에 설치된 장치인데, 이 버튼을 누르면 음향이 나와서 시각장애인에게 지금이 빨간불인지 파란불인지 알려준다. 파란불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계속해서 소리가 울리며, 파란불이 끝나는 타이밍을 알려주는 기능도 한다. 시야에 잘 들어오는 빨간 버튼이므로 비장애인 역시 어렵지 않게 버튼을 찾고 누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신체적 결함으로 자동차 소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에게‘시각장애인용 음향 신호기’는 시각장애인의 불안을 덜어주고, 더불어서 사고 비율도 확연히 줄이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버튼에 관련된 설명이 점자 등의 방식으로 같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각장애인은 이 버튼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으므로, 비장애인이 나서서 의무적으로 이 버튼을 눌러줄 필요성이 있다. 비장애인의 입장으로는 다소 시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각 대신 청각에 의존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소리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동시에 하나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휠체어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엘리베이터의 위치

 

외부에서 본 엘리베이터와 주변 환경. 출처:직접 촬영

 

이 사진은 월곡역의 지상 엘리베이터의 사진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도로 한가운데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사방에서 차가 돌아다니는 건 물론 횡단보도가 만연히 분포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도 마냥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 위치이다. 이것은 단순히 ‘엘리베이터’라는 일차원적인 배려만 보였을 뿐, 장애인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데서 도출된 결과물이다. 행동이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은 어쩔 수없이 엘리베이터와 같은 시설이 설치된 곳을 따라서만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이동 동선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으면 장애인은 움직이는 데 불편함을 겪게 된다. 비슷한 사례로 홀수 엘리베이터와 짝수 엘리베이터가 있다. 예를 들어,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고 싶으면 먼저 짝수 엘리베이터에 타서 1층으로 내려간 다음, 다시 홀수 엘리베이터로 갈아타 3층으로 가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미처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불편함이다.

 

노멀라이제이션 운동, 장애인에게 일상 되돌려주기

 

오늘날 장애인 복지의 중심에는 노멀라이제이션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단순히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완전히 똑같아지는 것을 지향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은 장애의 근본적인 문제는 장애인의 신체가 아닌, 환경에 있다고 본다. 다음은 어느 기사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스티븐 호킹, 헬렌 켈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에게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인간 승리'를 요구하지만 서구와 한국 사회는 놓여있는 여건 자체가 다르다. 제주에도 저상 버스가 도입되었지만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이용하기에는 여건이 다 갖춰지지 않았다. 도입된 저상 버스가 지역사회에 안착하기까지는 지역의 충분한 인프라와 주민들의 인식 등 다양한 제반 사항이 뒤따른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의 의미도 단순하지 않다. 장애인들도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다수가 보편적이라고 ‘믿고 있는’ 일상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이지, 사회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즉, 장애인에게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그들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고민 없이 휠체어를 끌거나 안내견을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장애는 신체적인 문제보다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더 크게 다가온다. 비슷한 예시로, 「100% 광주」라는 제목의 연극에서 휠체어를 탄 남성은 휠체어를 통해 무대 위를 누비다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연극이 마지막을 달리면서 배우들의 주 무대는 평평한 단상에서 그 앞에 위치한 계단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 계단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능력이 없었다. 그 계단은 폭이 넓지도 않았고, 경사로가 설치된 것도 아니었다. 연극이 절정을 달리며 배우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낼 때 무대의 왼쪽 구석에는 주인을 잃은 휠체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한 명의 남성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무대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소한 하나의 시설이 장애인의 전반적인 삶의 영역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그들을 일상에서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은 모순적이지만 그들의 장애가 아니라, 그들 각각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우리들이자, 그런 우리들로 구성된 사회였다.

 

1. 윤상용 외 3인, 「장애인복지론」, 신정, 2019

2. “장애인도 무조건 똑같아? 그게 ‘노멀라이제이션’이니” 김태연 기자, 제주의 소리, 2018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98943)

 
 

김유진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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