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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맛’ 카타르시스, 정화인가 배설인가

기사승인 2021.04.18  1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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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를 표면적으로는 그리스어로 정화(淨化), 또는 배설(排泄)을 뜻한다. 예술작품을 볼 때의 카타르시스는 작품의 수용자가 작품 속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그가 비극에서 벗어났을 때 느끼는 일종의 쾌감이나 안도감 등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현대의 문화 콘텐츠들도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때, 이것에서 콘텐츠의 수용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요소는 시쳇말로 ‘사이다 ’ 전개일 것이다. 그리고 사이다 전개를 위해 ‘마라맛’이라고 표현될 만큼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을 활용한다.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극적인 장면이지만, 그 자극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파헤쳐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범죄의 형태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는 현실에도 실재하는 문제이기에 이것을 미디어에서 다루는 방식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제작자들의 윤리의식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에서는 이런 것들을 무시한 채 자극만을 좇아 논란이 된 사례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19금 딱지’가 능사는 아니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작년에 방영한 시즌 1 이후에, 최근 시즌 2를 높은 시청률 속에서 마치고 시즌 3까지 준비 중이다. 그만큼 대중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다. <펜트하우스>가 인기를 얻은 비결에는 배우들의 연기나 공들인 영상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자극적인 막장 전개일 것이다. 해당 드라마에 대해 ‘마라맛’, ‘맵다’ 등의 익살스러운 평가는 예상을 뒤엎는 신선함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으나 때로는 조롱이 되기도 한다. <펜트하우스> 속에는 학교 폭력을 놀이처럼 즐기는 학생들, 미성년자를 감금하고 폭행하는 어른들,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아내에게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하면 무조건 응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계약에 억지로 서명하게 하는 남편 등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진 펜트하우스 시청자 게시판 / 출처 : 본인 캡처

 

청소년, 여성 등 상대적 약자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악역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인물에 대한 분노를 넘어, 드라마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들게 한다. 또한 가까운 일상과 언론에서도 빈번히 목격하는 범죄를 드라마에서조차 마땅한 이유 없이 봐야 하는 것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시즌을 앞둔 지금, 정작 드라마 속 악역들은 마땅한 벌을 받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그런 장면들이 통쾌한 복수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펜트하우스> 시즌 2의 후속작으로 최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 역시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이 속에는 지적 장애인을 물고문하고 폭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문과 폭행은 직접 드러내지 않고 충분히 암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장면들은 개연성을 위해 필요했다기보다는 오롯이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다. 또한 이 드라마에는 실제 범죄자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드라마 방영시점과 매우 가까운 시기에 많은 공분을 샀던 흉악범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 범죄자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함께 소환되는 피해자의 잊힐 권리는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제작자들은 작품 속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을 벌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잠깐이나마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통쾌함을 실제 피해자가 더 이상 상처입지 않게 하는 것보다 중요시하는 이들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어디선가 실제로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폭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미를 위한 가벼운 소재가 된다는 점은 씁쓸하다.

 

그들은 심지어 지상파 방송국에서, 이렇게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내면서 ‘19금 딱지’를 달았다는 이유로 그 모든 책임을 피하려 한다. 성인 시청자들이 봐도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자극의 정도가 지나치다면 이것은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도 없다. 이들은 현실의 범죄들을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범죄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자신들의 사회적 영향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는 따끔한 비판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렇게 종종 콘텐츠 제작자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매우 폭력성이 짙은 콘텐츠를 생산한다. 결국 그런 콘텐츠들에게서 대중은 사회적인 교훈, 심미적 체험보다는 오로지 그것이 주는 말초적인 자극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자극적인 콘텐츠로 수용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그것은 감정의 미적인 승화로는 볼 수 없다. 과도한 자극에서 느끼는 쾌감은 오히려 그들이 일상 속에서 표출하지 못한 부조리한 욕망의 배설에 가깝다. 자극의 문제점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장면에 제작자와 시청자들 모두가 둔감해지고, 더 큰 자극만을 좇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자극만 추구하는 콘텐츠가 무수히 많아진다면 사회 전체에도 그러한 정서가 팽배하게 될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세부사항을 촘촘히 구성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두가 쉬운 길을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래야만 할 창작자의 윤리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쓰백>과 같은 아동학대를 다룬 콘텐츠들은 피해 아동들과 연대하는 어른이 등장한다. 제작과정에서는 아동 배우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심리치료를 병행하기도 했다. 드라마 <악의 꽃>의 많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는 “아이는 안 죽였어. 그건 너무 수준 미달이잖아.”와 같은 대사를 한다.

 

적어도 현대의 작품이 과거보다 진일보했다면, 일차원적인 사고에서 더 나아가 좀 더 노련한 악인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약자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악인은 게으르고 불친절한 연출의 결과다. 피해자를 배려하는 섬세함이 결여된 콘텐츠는 그들에게 또 한 번 가장 광범위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해를 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다혜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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