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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법정을 향해

기사승인 2021.04.17  20: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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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과 지향점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한정된 재화를 나누어 쓰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특성상 다양한 이해관계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이해관계들의 충돌이 갈등을 넘어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법대로 처리해!” 개인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국가권력이 강제하는 법을 통해 잘못을 가리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법은 사회규범으로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법을 근거로 수많은 갈등을 해결하는 법원은 사회의 마지막 갈등 해소 기관으로 그에 합당한 권위와 독립성을 갖는다. 그렇게 형성되어온 질서 속에는 법과 재판은 공정할 것이며 법정은 사회 질서를 수호하고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힘쓸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다.

 

그러나 법과 법정에 대한 믿음은 권력을 움켜쥐고 흔드는 자들에 의해 쉽게 깨져버리기도 한다. 최근 임성근 판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임 판사는 후배 판사의 재판에 개입했고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흔들었다. 따라서 본 기사를 통해 임성근 판사 사건의 맥락과 쟁점을 정리해보고, 사법부가 직면한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법정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디케의 저울 일러스트 / 출처 : 본인 그림

 

사건 살펴보기

 

임성근 판사의 탄핵 사유는 ‘재판개입’이다. 2015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은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보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재판은 공적 존재에 대한 명예훼손보다 언론의 자유가 상위에 있다는 이유로 무죄로 끝이 났다. 그러나 후에 임성근 판사가 판결 전 이동근 판사로부터 판결 내용을 전달받아 재판독립을 침해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재판장이 피고인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법적 판단, 재판부 합의를 거쳐 독립적으로 판단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결구술본 초안을 메일로 전송해 빨간펜 첨삭을 받는 행위나, 지시가 직접적으로 판결에 반영된 결과 등을 살펴볼 때 임성근 판사의 행위는 명백한 재판개입이라는 비판이 가해졌다. 또한, 재판 전 김기춘 비서실장이 법원행정처장 박병대 대법관을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재판 내용에 대해 논의했고, 그것이 당시 담당 판사였던 이동근 판사가 근무하고 있던 법원의 수석 부장판사였던 임성근 판사에게 전해진 사실이 밝혀졌다. 수석 부장판사는 판사들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그러나 임성근 판사는 그의 직권남용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려면 개입이나 권한의 남용이 피고인의 직무상 권한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임성근 판사에게는 애초에 재판개입 권한이 없기에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임성근 판사가 월권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나 대한민국에 월권 죄는 존재하지 않고 재판개입이 임성근 판사의 직무상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법의 구성 요건에 따라 임성근 판사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1심 판결문은 임성근 판사의 무죄와는 별개로 임성근 판사의 행위가 위헌 행위였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게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임성근 판사는 후에 그에 대한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은 채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대법원장 징계의 경우 시효가 3년인데 이미 3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임성근 판사가 그 상태로 퇴직한다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한 행위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퇴직하여 전관예우를 누리며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퇴임을 앞두고 임성근 판사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탄희 의원에게 장훈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의원들에게 손편지라도 쓰겠다.”라는 말을 건냈고, 이탄희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그 편지를 소개하며 탄핵 추진을 제안했다. 그 뒤, 뜻이 맞는 의원들이 함께하게 되자 법관 탄핵 추진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2월 4일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은 재석 288명, 찬성 178표,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표 4표로 가결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법관 탄핵소추안 가결이었다. 이에 따라 2월 28일 임성근 판사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그가 퇴직하긴 했지만,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쟁점 짚어보기

 

임성근 판사 탄핵을 찬성하는 측은 이번 탄핵이 권력과 재판의 유착을 끊는 시작점이고 재판의 독립성을 훼손한 판사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탄핵을 반대하는 측은 이번 탄핵이 국회의 졸속탄핵이며, 헌법재판소 결정 전 퇴임했기 때문에 탄핵 청구가 형식적으로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탄핵 각하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임성근 판사의 탄핵이 결과적으로 각하될 것이기에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은 법 조항의 해석이 조항의 목적이나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 조항은 시대의 변화나 사건이 발생하는 속도를 바로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법적 판단을 내릴 때는 그 법 조항의 내용뿐 아니라 그 법 조항이 만들어진 목적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국회법 제 134조 제2항은 탄핵소추 의결서가 송달되었을 때에는 소추된 사람의 권한 행사는 정지되며, 임명권자는 소추된 사람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소추된 사람을 해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위 조항의 목적이 미리 공직을 그만둠으로써 탄핵 결정을 피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헌법재판소가 임성근 판사의 행위를 도피성 행위로 해석할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또한, 임성근 판사가 개입했던 산케이 신문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에서도 산케이 신문이 무죄를 받긴 했지만, 판결문에 기사의 허위성을 분명히 밝혀 실추된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이는 혹여 탄핵이 각하되더라도 결정문에 임성근 판사의 위헌 여부와, 그에 대한 비판점을 담았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사법부 독립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좋은 선례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질로 돌아가기

 

사법부의 독립성과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유는 판사의 판결에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임성근 판사 탄핵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으며 정권의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주장은 사법부 독립성의 본질적 의미를 간과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성’이라는 것이 결국 판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국민이 주인인 사회에서 판결받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농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독립성’을 방패 삼아 넘어갈 것이 아니라, ‘독립성’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재고를 통해 사법부 독립성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또한, 재판개입 등의 월권행위와 관련하여 처벌하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독립성을 스스로 침해한 판사에 대해 응당한 책임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 “법정은 그날 그날의 날씨에 영향을 받기보다 이 시대의 기후에 발맞춰야 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법정에서의 판결이 시대에 따르지 못하는 법이나 판례 안에서 맴돌지 않고, 일시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라면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과 국민이 선택한 국회는 정의로운 시대의 기후를 만들어야 하고, 재판부는 그 기후에 맞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정권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피고인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말이다. 법정이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그 신뢰를 지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하길 기대해 본다. 

최소라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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