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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가난은 소명이다

기사승인 2021.04.14  10: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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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 가족을 모두 여읜 주인공은 공장에서 일하는 상훈이라는 남자친구와 함께 월셋방에서 가난하게 살고있다. 다툼으로 집을 나간 상훈은 며칠이 지난후 돌아와 자신은 잘 사는 집의 도련님이자 대학생이고 고생모르고 자란 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보게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잠시 주인공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라며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상훈은 주인공에게 가난이라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살면서 빌린 돈을 건넸고 이렇게 가난한 생활은 비참할뿐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라며 그녀를 동정한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가난이란 비참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에게 가난은 소명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상훈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주인공과 대화하는 부분은 상훈과 주인공이 갖는 가난이라는 의미의 차별성과 주인공이 갖는 가난의 의미가 변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주인공과 상훈의 관계를 살펴보면 주인공은 상훈에게 꽤 마음이 큰 상태였다. 동거를 먼저 제안하고 훗날 멕기한 금반지를 자신에게 끼워주며 상훈이 먼저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소리를 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주인공은 상훈을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상훈에게 주인공은 자신이 잠시동안 한 가난 체험의 일부일 뿐이었다. 즉, 상훈에게 가난은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체험장같은 곳일 뿐이다. 또한 가난은 불결하며 가난한 사람은 한심하고 부끄러워야 하는 존재이다.

 

돌아온 상훈에게 당당히 돈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내쫓은 주인공은 자신이 가난을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왔을 때 달라진 주인공의 방은 주인공이 자신의 가난을 진정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가난을 도둑맞았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진정 도둑맞은 것은 가난이 아니다. 주인공이 진정 도둑맞은 것은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동기이며 살아가는 소명이다. 자신의 소명인 가난의 의미를 도둑맞은 주인공은 달라진 자신의 방에서‘매캐하고 짜고 고리타분하고 시척지근한 냄새’가 나는 비참한 가난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 박완서, 『도둑맞은 가난』 중

 

현대사회, 가난을 도둑맞은 사람들

 

우리나라 말에는 ‘궁해봐야 돈 귀한 줄 안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때 실업난을 겪는 청년들에게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한 말이기도 하고 지금도 종종 기성세대들이 소위 ‘헝그리 정신’이 없는 청년들에게 하는 충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에는 가난이란 더 나은 삶을 위해 ‘한번쯤은 해볼만한 경험’ 혹은 소설에서 나온대로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녹아있다. 이러한 말이 현대사회에서도 자주 쓰인다는 것은 아직도 현대사회에서 가난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벗어나고 기피해야 하는 상태라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급기야 가난을 ‘상품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15년 논란이 되었던 인천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체험활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동구청은 생활체험관까지 설치해 1박에 1만원을 받고 쪽방촌의 ‘가난’을 ‘체험’해보도록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해당 마을 주민들의 의견 수렴과정은 없었다.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쪽방촌에 사는 가난한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다른 예가 있다. 지속적으로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는 이번 정권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연설로 화제가 된 국회의원이 있었다. 연설에서 해당 의원은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현대사회 한국에서 임차인이 겪는 고충을 토로하며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의원은 연설을 하기 직전까지 서울 성북구와 세종시에 아파트 한 채씩을 소유하고 있다 매각한 상태였으며 이미 자가주택을 소유해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 주고 있는 임대인이었다. 쪽방촌을 체험하고자 했던 사람들, 그리고 불과 얼마전까지 다주택자였으며 현재도 자가주택을 임대하고 있는 의원이 자신도 같은 임차인이라며 공감을 호소한 연설은 쪽방촌에 살고있는 주민들과 부동산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임차인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겼다.

 

가난이란 무엇일까.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하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까’ 하는 생각이 제일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누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학자금대출을 갚아 돈을 모아서 월세를 알아보고 있을 때, 누구는 부모님에게 받은 돈으로 산 집의 값이 올라 가만히 앉아 몇억을 번다. 코로나시대 이후 배송 서비스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택배노동자들은 고된 업무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인해 고통받을 때, 누군가는 그러한 노동자들의 노고로 향상된 기업의 가치으로 인해 오른 주식으로 가만히 앉아 몇억을 번다. 이렇듯 가난이 가난을 낳고 부가 부를 낳는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가난을 기만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도둑맞았다. 삶의 의미와 살아가야 할 동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가난이란 진정 무엇일까.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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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민호. 2019. "가난은 인간을 낡게 한다"…편의점주가 화제 글에 담은 뜻은. 『연합뉴스』 (10월 3일), https://www.yna.co.kr/view/AKR20191001172000505

 

2. 차준호. 2015. 인천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체험’ 시끌. 『동아일보』 (7월 13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50713/72434040/1

 

3. 이다혜. 2021. ‘월간 커넥트’ 장예원, ‘가난한 사람’ 세대 간 인식 차이에 깜짝. 『데일리시큐』 (1월 7일), https://www.dailysecu.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337

최수민 지속가능저널 인턴 기자 yess@live.com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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