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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공인의 범위, 명확한 규정만이 답이다

기사승인 2021.04.04  12: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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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질받는 사람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유명인은 공인인가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는다면 단연 ‘학폭 미투’일 것이다. 여자배구계의 스타였던 한 쌍둥이 자매에 대한 학교폭력 폭로는 스포츠계를 넘어 각계로 이어졌다.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연예인, 인플루언서, 스포츠 스타를 넘어 심지어는 공무원의 학교폭력을 폭로하는 글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선명하게 묘사되는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사례에 대중의 공분은 커졌다. 이에 폭력 행위가 폭로된 스포츠 스타들은 협회나 소속팀으로부터 출전 금지와 같은 징계를 받았다. 연예인의 경우에는 스스로 출연 중인 방송에서 하차하거나 활동을 멈추고 자숙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중의 공분과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학폭 미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반인이라면 받지 않았을 사회적 처벌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결국 유명인을 ‘공인’이라고 볼 수 있느냐로 흘러간다. 유명인은 사회적 영향력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공인일까. 그렇다면 공인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

 

공인의 시작

 

공인이라는 말의 유래는 1964년 미국에서 일어난 일명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으로 불리는 사건의 재판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뉴욕타임스에는 미국 남부의 흑인 탄압에 대해 고발하고,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경찰을 비판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전면광고가 게재되었다. 이에 미국의 경찰국장 설리번은 광고주와 광고를 게재한 뉴욕타임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광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당시 재판부는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공직자’에 대한 보도는 공적인 쟁점에 포함되므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직자’라는 특정 집단을 예외로 설정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판결은 해당 재판이 처음이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공인과 관련한 각종 판결에 따라 ‘공직자’에 이어 공적인 쟁점과 관련된 ‘공적 인물’까지 통틀어 공인으로 분류되었다. 또한 공인을 대상으로 한 일부 언론 보도와 같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우리가 공유하는 공인의 정의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도 명예훼손 판결 등에서 공인을 언급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하지만 공인을 규정하는 기준은 판결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또한 언론과 대중이 사용하는 공인의 정의 또한 정해지지 않고, 각종 논쟁만이 계속되었다. 공인을 규정하는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공인’이라는 단어는 공직자와 공적 인물에 ‘유명인’까지 포함한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공인과 공적 인물은 물론 이슈가 되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와 같은 유명인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보도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인이라는 개념에 유명인이 포함된 가장 큰 이유는 언론에 있다. 공인의 공식적인 개념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인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언론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목적은 특정인에 대한 인격권을 다른 개인에 비해 더 침해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정하기 위해서다. 공공의 이익, 혹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말이다. 공인을 나누는 기준이 규정되지 않은 지금, 언론은 자체적으로 공공의 이익이 있을지 판단하고 특정인에 대한 정보를 검열하고 있다.

 

언론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공인의 범위

 

물론 모든 언론이 이를 정확히 판단해, 공공의 이익이 있고 국민의 알 권리에 충족할 때만 특정인에 대한 정보를 보도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특정 사건의 피의자를 모자이크하는 언론사가 있는 반면에, 같은 사건의 피의자를 모자이크하지 않는 언론사도 있다. 일례로 2019년 10월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했을 당시, 보도 사진 속 정경심 교수 얼굴의 모자이크 여부가 언론사마다 달라 논란이 있었다. 정경심 교수가 공인인지에 대한 판단이 엇갈린 결과였다. 또한, 화제가 된 연예계 소식의 당사자 이름을 익명으로 표시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실명을 그대로 공개하는 언론사도 존재한다. 언론사별로 공인을 규정하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자극적인 기사일수록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거나, 사건에 휩싸인 연예인의 이름을 공개하는 식의 기사는 그렇지 않은 기사에 비해 더 큰 관심을 받는다. 실제로 새해마다 톱스타의 열애설을 보도해온 디스패치는 연말 연초가 되면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에 며칠간 이름을 올리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언론이 점점 자극적인 기사와 내용을 보도하면서 공인의 범주가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특정인을 공인으로 규정해 특정인 관련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도해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25일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조주빈의 신상을 경찰이 발표하기 전인 3월 23일, SBS에서 조주빈의 신상을 먼저 공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찰이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통해 조주빈 신상 공개 여부를 발표하기로 한 24일을 하루 남겨두고 먼저 신상을 공개해, 신상 보도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일관된 공인의 기준’

 

이렇듯 공인의 범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한원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은 공인 문제를 다룬 한국기자협회 보도에서“알권리라는 게 사실 호기심 충족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피의자의 인격권을 존중한다는 대원칙을 견지하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언론사별로 시행하는 자체적인 기준이 아닌, 전체 언론이 공유할 수 있는 일관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관된 공인의 범위를 정한다고 해서 해당 논란이 해소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규정되어 있는 공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관련 정보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인이라고 볼 수 없는 특정인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부작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인의 범위를 규정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무고한 피해자를 막기 위함이 첫 번째다.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연예인들의 사과 기자회견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흔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인’이라는 말을 흔히 쓸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공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지양하고, 인물 혹은 사건의 성격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연애, 가정사 등 사생활에 대한 보도에서는 유명인을 사인으로 취급해 보도를 제한하고, 대중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특정 범죄에 대한 보도는 공인으로 취급해 제한하지 않는 등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에 따라 개인의 인격권을 제한할 수 있는 경우에만 ‘공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첫걸음은 공인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데에 있다. 각종 판례, 보도 준칙 등 파편적으로 퍼져있는 공인의 범위를 모아 하나로 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인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언론 보도 기준을 확립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대중들의 인식 또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우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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