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전태일이 쏘아올린 작은 공

기사승인 2021.04.02  23:58:02

공유
default_news_ad2

반공 이념 아래 민족 운동과 노동 운동이 탄압받던 시절 대한민국에 전태일이 살았다.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전태일은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았으나 인간답게 죽었다. 평화시장의 노동자가 되기 이전 그의 삶은 야생 고양이와 다를 게 없었다. 그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하루를 살고 밤이 되면 한 몸 누일 곳을 찾아야 했다. 평화시장에서 그는 양계장의 암탉 같다. 물만 먹고 알을 낳아야 한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그런 평화 시장에서 그는 자기 보다 어리고 약한 자들에게 공감했다. 그 작은 감정이 작은 불씨가 되어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게 하였고 이는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큰 전환점이 된다. 사회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동료들과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자본주의 발전국가를 전개하고 있었다.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 1961년부터 대한민국은 고도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일차적 원천은 “값싼 노동력”이었다. 노동자들은 노동 생산성의 1/5에 불과한 저임금을 견뎌야만 했다. 상황은 이러했으나 당시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을 결여한 상태였고 조직력도 약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어떠한 착취도 그들은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처지를 내면화하였다. 이런 경향은 미숙련 노동자일수록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내 비인간적 노동 현장에 대한 불만은 숙련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의 각성은 교육이나 사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 스스로가 체험에 의거하여 각성한 것이었다. 전태일 또한 숙련 노동자였다. 전태일의 분신과 더불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각성하게 되고 이것이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노동운동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전태일은 자신의 몸이 불타는 와중에도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절규하였다. 그의 참혹한 죽음, 그 직후에 사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전태일 평전>는 전태일이 대통령에게 보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편지가 실려 있다. 보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보냈다면 이 편지는 박정희에게 갔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니 우스우면서도 씁쓸해졌다. 그가 희망을 걸었던 대통령이라는 자는 전태일이 죽은 바로 다음 해인 71년 국가보위법을 실행했다. 이를 통해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이 제한되었다. 70년대부터는 중화학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평화시장과 같은 경공업 시장과 비교하여 훨씬 더 거대한 작업장에 대규모의 노동자가 집결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사회는 어떠한가? 경제가 발달하고 민주주의가 안정되면서 시민사회의 형편은 굉장히 좋아졌다. 아동, 청소년의 노동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노동 시간을 단축하여 삶과 노동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 ‘워라벨’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강조되고 있다. 이는 분명 처절했던 노동 투쟁의 역사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 시장에서 소외되는 자들이 많다. 부당 해고와 같은 불합리한 기업의 갑질로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거리로 나선다. 이러한 고용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뿐만이 아니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성들이나 성소수자들이 겪는 성차별도 만연하다. 이외에도 여러 군데에 다양한 형태의 노동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시민 사회의 관심은 크지 않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장애인 노동자들이 시위하느라 거리가 통제되면 시민들은 불평한다. 그 불평은 노동자들을 향한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자들을 향하지 않는다.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책임감을 갖고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태일은 그가 정의로웠던 만큼 순수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자신과 동료들을 소외시킨 사회에 끝없이 기대를 걸었다. 근로감독관, 노동청을 굳게 믿었으나 이내 배신당한다. 언론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사사건건 무시당하고 배신당하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읽는 내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적이었을 뿐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누구보다도 마주한 현실에 강한 책임감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과정에서의 희생 또한 전태일의 희생 못지않게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전두환의 군부독재체제 하에서 출판이 제의되었다. 이 책의 출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 관계자들은 이 원고의 전태일과 노동자들의 삶에 공감하였고 책을 출판해냈다. 많은 투쟁의 역사는 한 두 사람의 용기와 그에 따른 희생에서 시작된다. 또한 이는 작은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 책이 지금까지도 읽히고 주목을 받는 것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기만 했던 공감이라는 작은 감정이 갖는 힘은 소중하고 감동적이다.

 

송하은 / 바람인턴기자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송하은 지속가능저널 인턴 기자 yess@live.com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