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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와 거리가 먼 인권영향평가 인식

기사승인 2021.03.09  23: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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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공기관 실무자에게 걱정꺼리가 생겼다. 소속된 기관은 인권지수를 개발해 2019년부터 조직의 인권존중을 위한 노력을 계량화된 척도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임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직의 인권경영 이행 상황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작년에 비해 부정적 응답이 늘어서다. 지수에 포함된 다른 분야는 모두 향상이 되었는데 해당 분야의 저조한 평가결과로 인해 전체적인 인권지수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인권경영을 전담하는 부서 실무자 입장에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올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시 향상된 인권지수를 내밀어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내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부서나 개인적 차원에서도 목표 달성은커녕 오히려 후퇴한 결과가 나왔으니 내부 인사 평정에서 좋은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인권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평가요소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정적인 응답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인권존중을 조직에 내재화 하는 과정에서 지난 1년 동안 인권정책의 고도화, 이행시스템의 개선, 인권교육 강화 및 관련 이벤트·행사 등을 통한 인권존중 문화 확산, 구제절차 접근성 향상 등의 가시적인 성과였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권 의식 향상이 부정적 응답 증가로 이어진 것이란 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오히려 구제절차를 이용한 이해관계자 수나 고충 접수 건이 증가하지 않은 것이 그간 이행성과의 효과성을 의심케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기점으로 장애인 차별 진정 접수 건은 월평균 8.5건에서 11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진정 접수 건이 하락했던 시점은 인권위의 독립성이 의심받던 시점과 무관하지 않았다. 내부고발이나 인권침해 또는 차별 피해 신고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거나 가해자 징계 등 실질적인 구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자가 조직 내에 제도화된 구제절차를 이용할 유인은 사라진다. 한 시민단체에 의해 밝혀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구성원에 의한 부동산 투기의혹도 제보한 이가 바라본 LH의 내부통제시스템에 대한 신뢰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인권지수 평가결과로 고민에 빠져있는 공공기관 실무자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결과적으로 애써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1.262페이지로 구성된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서 ‘인권’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여섯 개가 잡힌다. 두 개의 ‘디자인권’이란 용어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인권 용어가 구성하는 평가지표는 다음과 같다.

 

“인권교육, 인권침해 구제절차 등 인권존중을 위한 노력과 활동

(* 고충처리제도 운영 등 근로자 및 대내외 이해관계자 인권보호)”

 

위 비계량 세부평가 지표는 윤리경영에 포함되어 있고, 윤리경영 가중치는 3/100점이다. 윤리경영을 평가하는 세부지표가 네 개니 인권경영 분야는 3/4점 수준이다. <2019 공기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평가대상 공기업의 윤리경영 평균 득점률은 제1유형이 53.00점, 제2유형이 59.23점으로 평가분야 중 가장 저조했다. 득점률 표준편차는 공기업 1유형, 공기업 2유형에서 각각 11.60, 12.30으로 다른 지표에 비하여 기관 간 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1점도 안되는 점수지만 피평가자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실무자의 고민은 평가접근 방식, 이와 궤를 같이하는 내부 인사권자 인식에서 기인한다. <2019 공기업 평가보고서>의 윤리경영 관련 평가지표에 기재된 평가위원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이런 저런 성과가 있었으나 여전히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부패 청렴 관련 평가지표에 기술된 의견도 마찬가지다. 부정적 결과 이면에 있는 인권경영 제도화 진전과 인권의식 향상성과를 평가하고, 그 이행조치 효과성에 대한 모니터링 필요성을 지적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공공기관의 임원이나 고위관리자들은 문제로 보일 만한 것은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든다.

 

인권영향평가를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실무자들은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부정적 인권영향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하면서 평가를 통해 도출한 잠재적인 리스크를 축소하려 하거나, 전년도와 동일한 인권영향평가지표를 고집하는 경우다. 전년도와 같은 평가지표를 사용하면 실재하거나 잠재되어 있는 인권리스크는 도출되지 않는다. 작년에 도출된 리스크를 예방 및 완화할 수 있는 조치를 제대로 시행했다면 말이다.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이전에 평가를 시행한 결과 도출된 인권리스크를 재점검해서 개선조치의 효과성을 평가하거나, COVID-19와 같은 새롭게 등장하는 인권이슈, 조직 내에서 불거지거나 동종업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 이슈를 깊이 있게 파악하는 방향으로 인권영향평가지표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인권영향평가 성과는 내부규정과 지침, 관행 등에 잠재되어 있는 인권리스크를 찾아내는 것에 있어야지, ‘리스크 없음’에 있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 실무자들의 고민은 이를 몰라서가 아니다. 평가취지와 목적을 곡해하는 평가방식과 이와 연계해 헛다리 짚는 인사권자들의 인식 때문이다. 평가지표를 구체화해 이를 예방하거나 잘못된 평가접근을 개선해 공공기관 인사권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시급하다. 인권경영 제도화 및 방식을 제안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영향평가 취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주체인 기획재정부에 인권경영 평가 취지를 왜곡할 수 있는 평가접근 방식 개선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

김용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소장

김용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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