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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통한 사랑의 방식 : 더 셜리 클럽

기사승인 2021.01.23  22: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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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의 일이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 생활에 지쳤던 나는 돌연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한국만 벗어난다면 내 삶도 행복해질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받아줄 사람을. 낯선 이국의 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더 셜리 클럽’ 책 표지_민음사/ 직접 촬영)

 

고작 스무 살이었던 설희가 호주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보랏빛 여행길 위에서

호주에 도착한 설희는 도시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셰어하우스에서 터를 잡고, 그곳에 있는 주민들과 같이 치즈 공장을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한 탓에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해, 주말이 되면 곧잘 도시로 구경을 나가곤 했다. 마침 그곳에는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설희는 테두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현수막을 들며 행진하는 ‘더 셜리 클럽’을 발견한다.

‘더 셜리 클럽’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할머니들이다. 셜리라는 이름이 아주 예전에 유행(우리나라로 치면 영희나 철수 같은 느낌이다)했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설희는 그녀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아마도 그녀의 영어 이름이 셜리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참 신기한 일이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인연이 생겨난다는 것은.

그 후 설희는 ‘더 셜리 클럽’에 가입을 시도한다. 본래라면 이민자 신분인 그녀를 받아들인 것은 원칙에 위배 되는 일이었지만, 특별히 임시 명예 회원으로 ‘ 더 셜리 클럽’은 설희, 아니 셜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더 셜리 클럽’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재미(FUNNY)와 음식(FOOD) 그리고 우정(FRIEND). 이 모토에 따라 할머니들과 함께 여러 감정을 나누며 셜리는 점점 성장해나간다. 그녀들은 인종과도 세대와도 관계없이 셜리를 한 사람의 고유한 개인으로서 대해준다. 그렇기에 셜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설희’ 라는 이름 대신에 스스로 선택한 ‘셜리’라는 이름을 완성 시켜나갈 수 있었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셜리가 S라는 인물과 만나게 되면서, 사랑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셜리에 묘사에 따르면 S는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외모의 소유자이며, 혼혈인지 이민자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스스럼없는, S는 셜리에게 매우 사랑스러운 사람인 건 확실했다.

어쩌면 셜리가 S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복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앞에서 문득 S가 사라져버린다. 연락 한 통도 없이. 셜리의 모든 걸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은 S였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S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떻게 해서든 S를 만나고 싶은 간절함에 셜리는 호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멜버른에서 에어즈록, 또 울루루에서 퍼스 그리고 로트네스트 섬에서까지 셜리는 S를 찾아 헤맨다.

그러한 험난한 여행에서 셜리에게 용기를 준 인물들이 있었다. ‘더 셜리 클럽 퍼스 지부’의 회원인 셜리 넬슨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 에밀리 넬슨이었다. 그녀들은 원주민 혼혈 출신으로, 꽤나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라온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녀들도 자신들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와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던, 셜리와도 같이.

그녀들의 어머니는 원주민 혼혈아 정책의 피해자였다. 어린 나이에 친부모를 잃었고, 백인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렇다고 풍족한 인생을 보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양부모는 친절했고, 그 응원에 힘입어 그녀는 친부모를 찾으려는 노력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어머니를 찾았을 때, 그녀는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에밀리는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양부모를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너무 멀어져 버린 친할머니를 보고, 서먹한 감정을 느낀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셜리와 에밀리가 성인이 되던 해,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에밀리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셜리에게 말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에는 사랑과 연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셜리’ 라는 이름 아래에

마치 한 앨범 속 제목이 없는 수록곡을 재생시키듯, 카세트테이프 형식을 차용한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한 기사(시사IN. 2020.09.17.)에 따르면 실제 작가인 박서련 작가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자신의 한국 이름과 비슷한 셜리라는 이름으로 생활했었다. 또한 연초 퍼레이드에서 실제로 ‘더 셜리 클럽’을 목격했다고 한 적이 있고, 그때 셜리처럼 자신도 외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 이름도 셜리에요.’

 

실제로 이렇게 그녀가 외쳤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작품 속 셜리처럼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던 작가는 비록 ‘더 셜리 클럽’에 가입하진 못했지만, 대신 친해진 호주 할머니과의 기억을 살려 이 소설을 실감나게 창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설희에게 셜리들이 있었듯, 처음 가본 낯선 곳에서도 우리 역시 누군가와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기를. 당신이 셜리와 같이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진심을 이해하고 전달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정원 바람 인턴 기자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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