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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시혜가 아닌 권리이다

기사승인 2019.10.14  16: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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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고속버스 장애인 휠체어석 설치 시범사업 지연…시행돼도 4개 노선에 고작 10대

-미국 그레이하운드 100%, 독일은 2022년 장애인 이동 ‘배리어 프리’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12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승차장 앞에서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장애인도 명절에 버스로 이동할 수 있게 해 달라”며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고속버스 시범사업 운행을 주장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국토부는 올해 추석부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를 시범 운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은 추석 이후인 10월 28일로 미뤄졌다. 전장연은 2014년부터 해당 사업 진행을 촉구해 왔지만 아직 실행되지 못한 상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3조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그러나 과연 현재 우리나라에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얼마나 될까. 지역 밖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문제를 살펴봤다.

 

■ 국내 휠체어 탑승설비 갖춘 시외·고속버스 단 1대도 없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시외로 이동 시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은 매우 열악하다. 전국의 고속·시외버스 9,168대(2019년 7월말 현재) 중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버스는 0대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버스에 타기 위해서는 전동이 아닌 수동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동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하려면 휠체어는 짐칸에 싣고 자신의 좌석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동해야 하기에 사실상 단독 이동이 불가능하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한자협) 최강민 조직실장은 “장애인 혼자 힘으로 시외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애인은 휠체어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데 옆에서 휠체어를 옮겨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KTX, KTX-산천, 무궁화호 등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기차의 장애인 좌석은 통상적으로 1개 편성(400~900석) 당 10석 이하다. 실제로 탑승하기 위해서는 열차 출발 15분 전에 미리 도착하여 역무원에게 연락을 취해야민 한다. 탑승 이후에는 이동이 용이하지 않다. 내부 통로가 좁아 전동휠체어의 회전이나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최강민 한자협 조직실장은 장애인의 열차 내 편의시설 이용과 관련하여 “열차 승무원 대부분이 여성이라 남성 장애인은 화장실 이동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또 장애인 화장실에 전동휠체어가 들어가면 화장실 문이 닫히지 않는 것도 장애인이 화장실 이용을 꺼리게 만든다.

 

■ 미흡한 연계교통… 산 넘어 산

어렵게 목적지 인근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도 연계교통이 미흡해 또다시 원점이다. 통상 장애인들은 특별교통수단으로 불리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지만 17개 지방자치단체 중 강원·충북·충남·전남·경북은 법정기준 보급대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저상버스(휠체어를 탄 채 오를 수 있도록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 보급률은 전국 주요 도시 평균이 20%에 불과하다. 충청남도·전라남도·경상북도의 보급률은 7~10%대에 그쳤다. 광역 간 이동 후에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추가적인 수단이 현저히 부족하다.

연계교통이 미흡한 탓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비장애인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전장연의 박승하 활동가는 장애인 200명 당 1대로 정한 특별교통수단의 법정기준대수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다. 박 활동가는 “지역별로 임산부, 국가유공자, 65세 이상 노인 등 특별교통수단 이용대상자가 상이하다”며 “법정기준대수를 200명 당 1대로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고 말했다.

 

■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시외·고속버스

장애인 시외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2014년 설 연휴이다. 전장연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은 그때 이후로 명절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버스타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2017년 4월~2019년 9월 ‘휠체어 탑승설비 장착 고속·시외버스 표준모델 및 운영기술’을 개발하여 올 하반기에 시범 운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에는 설비 장착 버스의 시승식이 열렸다.

당초 계획보다는 지연됐지만 다음 달 28일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시외·고속버스 시범 운영이 시작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의 4개 노선에서 총 10대의 버스가 도입된다. 공단 홍보실은 “다음 달 18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상주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서 실제 휠체어 탑승 설비 장착 버스를 운전할 기사 약 30명을 대상으로 관련된 교육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시범 운영에 사용할 휠체어 탑승 버스는 기존 시외·고속버스를 개조하여 만들었다. 새로 개발되는 시외·고속버스 표준모델에는 휠체어 탑승을 위한 승강장치 및 승객보호를 위한 휠체어 고정장치와 3점식 안전띠가 설치되었다. 또한 B형 전동 휠체어(폭 700mm)가 버스 안으로 이동하기에 충분한 크기(폭1,150mm)인 휠체어 탑승 전용 승강구가 버스 측면에 장착되었다. 버스 한 대에 탑승 가능한 휠체어 수는 최대 2대이며, 슬라이딩 좌석을 적용하였기에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하지 않을 때는 휠체어석을 앞뒤로 밀어서 비장애인석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게 했다.

 

■ 해외에서 보장하는 장애인 시외이동권

미국 영국 등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시외버스에 장애인석이 더 많이 설치돼 있다. 2019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미국의 그레이하운드는 자사 고속버스의 100%를 휠체어 탑승 가능 차량으로 운행하고 있고, 영국의 고속버스 업체 내셔널 익스프레스는 전체 차량의 95%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해 운행 중이다. 호주의 브이라인은 보유 버스의 60%, 일본은 전세 고속버스의 25% 가량이 휠체어 탑승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실제 이용률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시외이동권은 인권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 개발이 이루어졌다. 장애인차별금지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고속버스 접근성 규정(Fleet accessibility requirement for OTRB fixed-route systems of large operators, 2000년 10월 30일 시행)에 의해 대형 회사는 2006년 10월 30일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50%, 2012년 10월 29일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100%에 휠체어 사용자 등이 탑승할 수 있는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영국은 대중교통 접근성 규칙(Public Service Vehicle Accessibility Regulations)에 의거, 2020년 1월 1일까지 모든 고속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또한 정부기관인 장애인교통자문위원회(DPTAC : Disabled Persons Transport Advisory Committee)를 통해 신체 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 장애인, 치매성 노인 등의 교통 접근성 확보를 위한 내부적 지침을 마련했다.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한 기사도 기관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DPTAC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985년 교통법에 의해 제정된 전문 위원회로서 … 장애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갈 수 있어야 하며, 추가 비용 없이, 쉽게,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2020년까지 전체 버스의 약 70%에 해당하는 3만5,000대를 바닥면이 지상에서 30cm 이하인 논스텝 버스로 전환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은 2022년 1월 1일까지 모든 지자체들이 대중교통(시내, 시외버스, 트램/지상철, 연방 주 내에서 운영되는 단거리 기차)의 완전한 ‘배리어 프리(barrier-free)’를 구현할 것을 의무로 하는 여객운송법 제8조 1항을 2013년에 시행했다.

 

■ 장애인 이동권, 시혜가 아닌 권리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아직 미흡하다. 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한 시외버스 외에도 지하철, 전철, 자가용 이용, 계단 이용 등 장애인이 이동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아직 수없이 남아 있다.

한자협 최강민 조직실장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예산을 장애인에게 베푼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이 차별받는 현실에서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전장연 박승하 활동가 또한 “장애인 이동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이유는 이동(교통)이라는 가치가 철저히 공공재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누구나 평등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28일 시행 예정인 버스 휠체어석 설치 시범사업에 대해서 최 실장은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췄다. 실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 수가 전체 버스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버스 10대가 도입되고, 내년에도 10대밖에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토부가 추진하는 버스 장애인석 설치 시범사업이 이후 확대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시범 사업에는 5~10년 후에 휠체어석을 얼마나 확대할지 등 장기 계획이 마련돼 있지 않다. 2002년에야 국립국어원에 정식 어휘로 등록된 ‘장애인 이동권’이 명실상부하게 보장되는 날은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신다임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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