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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About Us, Without Us

기사승인 2019.09.23  23: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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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기회균등이나 평등권을 침해한다. 존재 자체, 비주류라는 것이 차별의 이유가 된다. 소수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minority'를 검색해보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존재이면서 비주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권리 주체와 보호 대상을 ’모든 국민‘으로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이주 노동자는 존재 자체가 이유가 되어 차별을 받는다. 차별 받아서 소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라서 차별을 받는 것이다. 소수자는 헌법과 법률의 보호 테두리 밖으로 내버려진 사람이다.

 

반면, 사회적 약자 또는 취약계층은 그 테두리 안에 존재하지만, 정치권력 소외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이유가 되어 밖에 있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온전히 시민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소수자는 인권의 확장, 즉 테두리를 넓혀서 포용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일시적인 우대조치 제도화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시켜 주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국민’을 ‘모든 사람’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 장애인 고용할당제나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 등이 그 예다.

 

국제인권규범에 따르면, 여성, 아동, 유색인종, 이주노동자, 장애인이 대표적인 소수자이면서 사회적 약자들이다. 선거권이 없었던 시절 여성은 소수자였고, 선거권이 주어진 이후에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남아있다.

 

국제인권규범과 각 국의 법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규정하면서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스스로가 정치세력화 하지 않으면 평등권 쟁취는 요원하다.

 

위에서 언급한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 수는 인구의 절반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를 이유로 분류기준에 코웃음 치는 이가 있지만, 인종분리정책이 존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순한 숫자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집단이 모두 균질한 것도 아니다. 정치권력을 쥐고, 안정적 사회·경제적 지위에 오른 여성은 얼마든지 많다. 장애인,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해당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우대조치 수혜대상이 되는 이들도 있다.

 

소외는 여기서도 발생한다. 사회적 소수자 또는 약자 집단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은 존재한다.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이들도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좋은 일자리가 줄고 청년이 갈 곳이 없다는 둥의 발언을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한 것은 가난한 백인들이었다. 트럼프는 유색인종, 이민자들에 대한 우대조치에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주류이지만 가난한 백인들을 공략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발언으로 이들을 선동한다. 혐오와 트레이드오프 사고에 감염된 이들이 그의 정치적 기반이고 자산이다.

 

이즈음, 조국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청년과 가난한 백인을 엮을 생각은 없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청년이 분노하고 상처를 받은 것은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우대조치에 대한 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권력과 사회·경제적으로 주류 중에 주류에 속하는 이의 가족이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부당하게 수혜자가 되었다는 인식에 기반을 하고 있다. 공정사회를 약속한 대통령 최측근으로, 기대하는 바가 컸기에 생기는 좌절의 표현일 수도 있다.

 

대통령과 여당, 법무부장관의 선택은 청년과의 관계가 아닌, 야당과의 관계 속에서 정치공학적인 선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우리사회 청년들은 집단의식은 약하더라도 사회적 약자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어떤 역할을 청년에게 기대하기보다, 그들 앞에 놓인 문제를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취약계층으로 인식한지 오래다. 지자체 청년위원회, 정당 청년할당제, 청년고용 할당제, 청년기본소득은 이제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다.

 

꼰대 표현으로, 지금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은 지난 20년 동안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굳이 국회의원 등, 정치 권력자들이 기껏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자녀를 취업시키기 위해 반칙을 부리거나, 취업청탁을 했다는 뉴스를 오늘날에는 자주 접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도 취업비리가 성행했지만, 당시 사람들이 별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일명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가 20년 전이라고 넘쳤던 것도 아니니, ‘기껏’이란 표현은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들까지 반칙을 통원해 경쟁에 뛰어든 것을 보면, 전통적인 시각의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는 아주 많이 줄어들었고, 전체적으로 일자리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청년들을 억압하고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취업 문제라면,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무중력지대를 선사할 수 있다. 일자리의 안정성과 질이 확보가 되어야만 그들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를 옭아매는 중력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 원인 타파에 나서지 않으면, 청년들의 몫을 챙겨줄 이는 없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가 하겠다는 메시지다.

 

 

김용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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