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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uden의 시를 읽으며 DLS 사태를 바라보다

기사승인 2019.08.30  16: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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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미국 시인 W.H. Auden(1907~1973)은 ‘W.B. Yeats를 추모하며’(In Memory of W.B. Yeats)라는 시를 통해 시인 Yeats를 애도한 바 있다. 영국의 식민지로서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초반의 아일랜드 정치 상황 속에서 묵묵히 시를 썼던 Yeats를 그는 “바보 같았다”(silly)고 표현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Auden 역시 ‘바보 같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W.H. Auden의 'Horae Canonicae’ 일부 발췌

 

그는 연작시 ‘Horae Canonicae’에서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일에 몰두할 때 빛나는 두 눈이 그 사람의 진정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눈을 마주하지 않고도 상대와 소통이 가능할뿐더러 그나마 눈을 마주하며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순간들마저 그 의미를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수익률도 좋은데 안전하기까지 하다면서 고객과 두 눈을 맞추며 초고위험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DLS 사태가 바로 그 증거다.

 

계속해서 제기되는 불완전 판매 의혹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과 DLS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파생결합펀드(DLF)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DLS는 금리가 일정 수준 아래로 하락하면 투자자가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인데 독일, 영국, 미국 금리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DLS의 경우, 금리가 만기 시점에 –0.2%보다 아래면 손실을 보게 되는데 금리 하락폭과 비례해 손실이 커지며 –0.7%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을 모두 손실하게 된다.

문제는 은행이 이러한 투자상품 위험등급 1등급의 상품을 고객의 투자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판매했고 피해자의 절반가량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라는 사실이다. 상품 판매가 시작되던 3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영역을 오가던 상황이었다. DLS가 마지막으로 발행되던 날 금리는 –0.103%로까지 떨어지며 원금 손실 구간에 근접하였다. 다른 은행들의 경우 위험을 인지하고 상품을 판매조차 하지 않거나 판매를 중단하였지만,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판매를 강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상가상으로 은행이 표준투자권유준칙을 어기고 ‘위혐중립형’ 개인투자자에게 투자 성향에 맞지 않는 위험등급 1등급 상품의 투자를 권유했다거나 투자 성향을 임의로 수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은행의 불완전 판매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엇이 은행원들의 눈빛을 훼손시킨 걸까.

 

단기 실적 중심의 KPI가 점화한 실적 경쟁

상품의 위험도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는 투자자들의 증언이 빗발치는 배경에는 단기 실적 중심의 KPI(핵심평가지표)가 자리하고 있다. 민간기업으로서 그동안 이자 이익에 주력하던 은행이 비이자 이익 창출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KPI가 탄생하였다. 고객 수익률, 고객 보호, 고객만족도와 같은 고객 중심 지표가 아닌 수익성 또는 고객 유치율과 같은 은행의 단기 실적에 집중한 평가 지표가 이번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상반기 KPI의 고객 수익률 비중은 각각 2%와 5%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은행원이 실적을 위해 고위험 상품을 판매해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의심된다.

다행스럽게도 기업이 고객의 신뢰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문제의 은행들은 물론 나머지 시중은행들까지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하반기 KPI를 고객 중심으로 개편하고 투자 위험도 측정 절차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더 이상 직원들이 실적 쌓기에 급급해 눈앞의 고객을 상대로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들린다. Auden을 바보 같다고 표현한 발언 또한 철회하고 눈이 지닌 진실성을 다시 믿어도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문제는 최소한의 질(Quality)은 보장되었지만 양(Quantity)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각지대에 이번 사태 피해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고령층 투자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늘어나는 비대면 거래와 여전히 방치된 금융소외계층

김병욱 의원실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90살 이상의 초고령자 13명과 80대 202명에게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억 단위의 투자금을 보유한 고령의 고액 투자자가 은행원들의 실적을 적잖이 책임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중은행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 제공 및 점포 통폐합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출시한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 가입자 수가 몇 만 명을 돌파했다며 자랑스레 보도하지만, 과연 그 성과에 금융소외계층인 고령층은 얼마나 기여했을까. ‘당신만의 금융 파트너’로 돌아온 은행원을 찾아가 만나자니 점포 수는 줄어들고 있고 전자기기에 여전히 친숙하지 않은 고령 투자자가 방치된 상황은 KPI 개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간편한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더불어 적극적인 시니어마케팅을 통해 은행의 ‘큰 손’ 고객들을 챙겨야 할 시점이다.

 

W.H. Auden의 ‘September 1, 1939’ 일부 발췌

 

Auden은 줄곧 보편적 사랑을 강조했다. 불안정한 상황일수록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정의연대,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약탈경제반대행동이 23일 손태승 우리은행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그의 눈은 과연 빛났을까. 우리는 Auden과 달리 그의 눈이 진심으로 빛났는지 거짓으로 빛났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비록 눈의 효력은 미미해졌지만, 다음 수단이 무엇이 되었건 연대를 통한 정의 실현은 계속되어야 한다. ‘눈빛’이 아닌 ‘빛’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좇아야 한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며 W.H. Auden의 추모글(In Memory of W.H. Auden)을 마무리한다.

 

유미화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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