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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화, 웃을 수 없는 동양인

기사승인 2018.10.24  16: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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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0대들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꿈과 희망의 마법 학교 이야기가 있다.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다. 영국 마법 학교 이야기였지만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데에 있어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 자라고 보니 호그와트는 동양인을 반기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최근 해리포터의 첫사랑이자 몇 안되는 동양인 캐릭터였던 ‘초 챙'의 이름이 ‘칭챙총' 이라는 동양인 비하 단어에서 비롯되었다는 논란이 SNS 상에 퍼졌다. 나와 동시대를 사는 친구라면 해리포터는 모를 리 없지만 이 이야기도 알고 있는 지 궁금해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초 챙 이름이 비하하는 칭챙총에서 유래됐다는 논란을 들어봤는지 말이다.

답은 “아니”였다. 오히려 초챙이 똑똑하고 인기가 많은 여학생으로 나와 동양인 비하 의도가 있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논란을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친구는 만약 사실이라면 캐릭터를 멋지게 설정해놓고 왜 굳이 이름에 그런 티를 낼까 “어이가 없다”고 답했다. 한 편으로는 “의도 없이 지은 이름이 아닐까 믿고 싶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내비쳤다.

  

‘해리포터’ 속 초 챙

이처럼 해리포터 또한 유감스럽게 동양인 차별 논란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위에서 언급된 호그와트 교내 최고의 ‘엄친딸’ 중 하나로 묘사되는 초 챙이라는 중국계 인물이 있다. 작품 내에서 아프리카계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긍정적인 편인 반면 초 챙은 동아시아인에 대한 전형적인 인종차별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동양인 캐릭터 초 챙 / 출처 : 네이버 영화

작품 후반부에서 마법부 장관을 역임한 킹슬리 샤클볼트, 수잔 본즈가 속한 본즈 일가, 그리핀도어 퀴디치 팀 주장인 안젤리나 존스, 작중 퀴디치 중계를 자주 한 리 조던 등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인물들은 유능하게 묘사된다. 남아시아계 패틸 자매도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던 학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등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챙은 이름에서부터 영미권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칭챙총’에서 유래했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이 ‘칭챙총’이라는 표현은 서양인들이 중국어를 낯선 동양의 언어라는 이유로 비하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우스꽝스럽게 발음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일반적으로 등장인물의 작명에 상당한 의미부여를 하는 롤링의 특성상 초 챙이라는 이름은 칭챙총을 따와 너무 대충 지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또한 챙은 동아시아인 여성에게 주로 씌워지는 남성에게 강하게 의존하는 성격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지니고 있다. 이 논란이 사실이라면 롤링은 헤르미온느와 론을 통해 인종차별주의를 강하게 비판해왔으나 결국 자신 스스로도 동아시아계 인물에 대한 차별적 묘사를 온전히 피하지 못한 것으로 비춰진다. 즉, 롤링은 서양에 만연해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초 챙은 비록 전개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동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인 묘사와 비하 표현의 가능성이 드러난 점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는 서양의 동아시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지니고 있는 작품인만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월드워 Z’ 속 한국 묘사

안타깝게도 유명 작품 속 직간접적인 동양인 비하나 왜곡은 비단 해리포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층 빌딩 사이 자동차가 즐비한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가족들과 황급히 인파를 헤치며 도망간다. 브레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 인기를 끌었던 좀비 영화- ‘월드워 Z’(2013) 의 한 장면이다. 현대적이고 익숙한 미국의 모습이다. 영화가 진행되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좀비가 된 사람들을 조사하기 위해 UN 소속 조사관 제리가 한국의 평택 미군 기지를 방문한다. 한국인인 내게 미국보다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이다. 기지 안에서 의사가 지푸라기 위에 군인을 눕혀 놓는다. 의사와 환자, 두 사람 모두 손은 새까맣게 더럽고 옷은 남루하다. 벽에는 덕지덕지 신문지가 붙어있다. 그들은 형광등도 아니고 램프를 사용한다.

영화 속 21세기 한국은 1950년대 전후 풍경으로 멈춰있다. 한국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2013년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니 블록버스터 영화에 한국이 등장해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들이 있다. 2018년에는 조금 달리 보고싶다. 전 세계인이 볼 콘텐츠를 만들면서 미국은 동양에 이토록 무지해도 괜찮은 것인가 묻고 싶다. 영화 제작자들과 국적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들이 이 곳에 살고 있다. 아프면 콘크리트로 지어진 전문 병원에 가고 전기로 불을 켜고 끄고, 기호와 취향 혹은 목적에 맞는 벽지를 바를 줄 아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산다.

 

월드워 Z 속 낙후된 한국 군사기지의 모습 / 출처 : 네이버 영화

‘월드워 Z’ 속 한국의 모습보다 씁쓸한 부분이 있다. 2013년의 한국 군사기지가 암흑의 지푸라기 깔린 땅으로 묘사된 장면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널리 흥행한 대작에 한국이라는 장소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 국가적 위상이 발전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영화 속 한국은 ‘좀비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등장하며 탈영병을 수갑도 아닌 밧줄로 묶어놓는 구시대적 모습으로 묘사될 뿐이다.

창작물에는 허구성이 내포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은 빌딩숲으로, 우리나라는 산간 벽지로 재현한 점에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세계를 타겟으로 한 흥행 대작을 설계하면서 구글에서 평택미군기지 사진 몇 장만 찾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콘텐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에는 책임도 그만큼 크다는 점이 담겨있다. 이제는 콘텐츠 속 허구와 상상에 기댄 동양 묘사에 책임을 묻고 왜곡된 한국의 모습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때다.

 

‘메이즈 러너’의 한국계 배우 이기홍

2018년 1월 17일,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의 개봉으로 메이즈 러너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이기홍은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겠다. 국내 인지도가 미비했던 한국계 배우는 주연으로 열연하며 국내외의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비중 높은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는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선 상징적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 할리우드 영화계의 변방에서 벗어난 것이었을까? 답은 ‘아직’이다.

대다수의 할리우드 영화가 프로모션 차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홍보를 한다. 메이즈 러너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메이즈 러너’의 프로모션 행사 스케줄이었다. 이기홍이 맡은 ‘민호’는 극중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 ‘뉴트’(토마스 브로디 생스터), ‘트리사’(카야 스코델라리오)와 함께 주연 라인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부분의, 특히 서구의 홍보 행사에서 제외되었고, 20세기 폭스는 현지팬들의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인종차별 논란의 시작일 뿐이었다.

비슷한 프로모션 패턴이 후속편에서도 반복되었다.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의 경우 프로모션 일정이 전세계 최초 개봉국이었던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이기홍은 딜런 오브라이언, 토마스 브로디 생스터와 함께 내한하여 기자 간담회, 라디오 방송 등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그후 그는 다른 주연급 배우들과 달리 뉴욕, 파리, 런던 등에서 진행된 프리미어 일정에서 제외되었다. 여러 행사가 있었던 내한 바로 다음 주, 이기홍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던 곳은 LA 행사뿐이었다.

인종차별 논란의 정점을 찍은 것은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당시였다. 이기홍은 엔딩 크레딧에서 다른 주연들과 달리 조연급 배우들보다 뒤에 등장했다. 15명 중 아홉 번째 순서였다. 이기홍의 이름이 논란의 중심이 된 더 심한 사건도 있었다. 사전 홍보 당시 이기홍의 이름은 제작사인 20세기폭스의 공식 사이트, 페이스북 홍보 페이지, 유튜브 예고편 영상의 설명란, 로튼 토마토 등 모든 페이지에 등재되지 않았다. 이기홍보다 비중이 적은 배우들의 이름도 실렸음에도 말이다. 이에 SNS에는 #whereiskihonglee 라는 해시태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20세기폭스 측에 항의글을 직접 게재하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분명 그후 이기홍의 이름이 재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도 했는데, 아니었나보다. 20세기폭스의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출현자 리스트에서는 여전히 이기홍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 '메이즈 러너'에서 동양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이기홍 / 출처 : 네이버 영화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서방의 동양인 차별이 최근에도 빈번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동양계 캐릭터 작명에 혐오 표현을 사용했다는 의구심을 불러 온 ‘해리포터’, 한국을 현실의 부강한 모습과는 달리 오지를 연상케하는 낙후된 사회로 묘사한 ‘월드워 Z’, 주연급 역할을 맡은 동양인 배우를 조연들보다도 못한 대우를 한 ‘메이즈 러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영화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차별 받는 이들도 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2017년 8월, 에드 스크레인이 영화 ‘헬보이’ 리부트에서 자진하차했다. 영국 출신 백인 배우인 그가 맡은 역할은 일본계 미국인인 ‘벤 다이미오’였다. 원작 만화에서 아시아계 혼혈로 설정된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발표가 난 후, 영화는 극심한 화이트워싱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그는 ‘옳다고 느끼는 일’을 하겠다는 말과 함께 하차를 택했다. 벤 다이미오 역은 한국계 배우인 대니얼 대 킴에게 돌아갔다. 할리우드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잔재가 만연하지만 이를 몰아낼 수 있는 힘이 모두에게 있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직접적이거나 교묘한 동양인 차별에 반응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면, 분명 바뀐다.

 

 

이정훈 / 정선은 / 주수빈

지속가능저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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