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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합니다

기사승인 2018.08.16  20: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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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14일 서울에는 엄청난 비가 내렸었다. 투둑투둑 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지난해의 광화문 광장에는 일본군‘위안부’기림일을 알리는 행사에 참여하고자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 시민들, 또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시선을 두게 된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억센 비도 슬프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무대 위에서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시던 길원옥 할머니께서 지으시던 미소에 함께 미소를 머금었던 기억은 노란 불빛처럼 여전히 따뜻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8월 14일, 비가 오지도 않는데 나는 어쩐지 마음이 착잡하다. 한 해가 가며 생존하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수는 더 줄었는데 어느덧 1348차를 맞게 된다는 수요시위와 전국에서 모이는 성명서 전달을 멈출 수 있는 날은 아직도 오지를 않았다.

저녁 7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평화나비네트워크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를 찾아갔다. 오늘 열린 함께 평화 촛불 문화제는 제 6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을 맞아 세계 곳곳의 개인과 단체가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장으로서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개최되었다. 일본군‘위안부’기림일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 공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해 2012년 12월의 <11차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최초로 지정되었고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출처:정대협

 

일본대사관은 종각역에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네이버 맵을 켜서 주변 건물을 이리저리 살피며 걸어갔다. 어느 순간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더 이상 지도가 필요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인스타그램 꽃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소개하는 학생들이 종이태극기를 건네고 있었다. 국가기념일이 된 오늘을 알리는 캠페인이라 뜻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말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수국이 그려진 종이 태극기를 하나 받아들고 행사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거대하게 솟은 회색빛 건물들 사이의 작은 무대와 그 앞에 모여 앉은 몇 백의 사람들은 마치 오아시스 같았다. 150여 명의 전국 평화나비 단원들을 선두로 시민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교통문제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노란 펜스로 확보된 행사 구역은 다소 협소해 보였지만 그들은 줄을 맞춰 앉아 있었고 12명 이상 배치된 경찰들이 힘쓸 만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행사는 평화롭게 그러나 굳세고 힘찬 울림으로 이끌어졌다.

 

 

촛불문화제 1부에서는 정대협 윤미향 대표님과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소설을 쓰신 김숨 작가님을 모신 북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윤미향 대표는 현재 누구보다 씩씩한 여성운동가로 활동하시고 계신 이용수 할머님을 처음 뵙던 때를 회상했다. 그녀가 대구의 작은 신문사에 찾아가 일본군의 전시성폭력 사실을 제보하신 이용수 할머니를 처음 만나 뵈었을 당시에는 사람을 만나면 손을 열 번 이상 씻으시고 문을 열 때는 손잡이를 휴지로 감싸서 여실만큼 심각한 피해의식과 마음의 병이 있으셨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의 만행으로 그녀와 같은 지옥을 버텨 왔을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김숨 작가의 소설 <한 명>과 <흐르는 편지>는 나락 속에 드러난 인간의 누추한 본성, 이기심과 폭력성을 짚어내며 긴 세월동안 끔찍한 고통 속에 지켜낸 그녀들의 생존을 경이로운 ‘선善’이라 칭한다. 김숨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스로를 사랑하시냐는 질문에 대해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며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떠날 수 있을까.” 하시던 할머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죽지만 말아야지 하는 절규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버티어낸 소녀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어도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낯설어 품지를 못하는데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그 상처를 진심으로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다. 이어서 진행된 연극 <갈 수 없는 고향>의 배우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누가 왜, 우리를 도대체 왜, 살아서 집으로”라는 먹먹한 가사로 도심을 울렸고 그 울림은 한 사람 한사람의 가슴 가슴에 파동처럼 번졌다. 나는 이 상실의 울림이 부디 일본까지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부에서는 문화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2부가 시작되기 전 공개된 일본군‘위안부’기림일 응원영상에서는 뉴질랜드, 미국, 영국 등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서 여성인권운동을 이어오신 세계 곳곳의 응원이 담겨 있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순례하며 110명의 외국인을 만나 나비 손수건과 팜플랫을 나누는 나비걸음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생들은 “이번 순례를 통해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힘을 모야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고 발언했다. 세계 무력분쟁 지역인 콩고, 코소보, 북이라크에서 초대한 전시성폭력 생존자 여성들은 “용감한 한국의 할머니들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며 우리 국가에서도 전시성폭력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싸울 것을 다짐한다. 할머님들의 용기는 세상이 힘들어도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알게 했다.”고 발언했다. 이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함께 평화를 외치는 때가 온 것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참고 견디며 여성인권의 보호와 확대를 외치는 일을 계속해온 사람들, 국가기념일이 된 8월 14일을 기리며 찾은 촛불문화제는 그들이 지켜온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가치를 기억하는 데 더불어 피해자가 당당하게 성범죄를 고발할 수 있고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는 자리였다.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가 함께 경이로운 선善을 응원하고 시작하는 자리였다. 한국의 여성들은 생존했고, 용기를 냈으며, 아직도 존엄을 빼앗기고 있는 세계의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전하고 싶다. 그런 당신을 사랑합니다.

 

 

박민영

지속가능저널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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