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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독재의 유산

기사승인 2018.04.25  16: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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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이 났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18개 중 16개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4년 벌금 180억을 선고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것이 모두 ‘종북좌파’의 농간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선고 당일도 서울중앙지방법원 밖에는 탄핵무효,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태극기 집회가 진행되었다. 탄핵정국이 시작된 201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약 17개월 동안 이들의 집회규모는 바뀌었지만 이들의 저항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의 행태는 누가보아도 상식적이지 않다. 사실 이들은 ‘수구꼴통’이며 전근대적 가치에 갇혀 말이 통하지 않는 족속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일 것이다. 하지만 극우보수라는 프레임만으로 이들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왜 하필 박근혜 대통령의 복권을 주장하는 것일까?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 중 자신의 범죄행위로 이 많은 인파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할 것이다. 보수라는 추상적 개념은 이 특수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위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징성을 이해해야 한다.

 

출처: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운동본부’의 2017년 2월 ;27일 '조선일보' 광고 갈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50~70대 중장년층이라는 점은 그녀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현전하는 분신이다. 저널리스트 안치용은 17년 6월 ‘르몽드 디플로마디크’에서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피격 사망 이후 ‘퍼스트레이디’가 된 스물두 살의 여성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범위를 넘어 국민의, 그리고 아버지의 대리 여자가 되었다”고 평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그리워하는 대상은 궁극적으로 박근혜라는 인물이 아닌 박정희에 대한 향수이다. 따라서 그의 분신인 박근혜를 옥좌에서 끌어내리고 감옥에 가둔 세력은 곧 종북이며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이다. 하지만 이들의 열렬히 추종하는 철인 박정희는 역사적 사실보다 허구에 가깝다. 왜냐하면 박정희 신화는 역사의 객관적 평가를 기반으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화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박정희를 신격화하는데 사용되는 산업화, 새마을운동 그리고 대중적 지지라는 프레임이 재평가의 여지가 있거나 사실이 아니 때문이다.

 

박정희 신화가 사회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7년에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의 『인간의 길』 그리고 보수 언론인들의 기고에서 촉발되었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중앙일보에 연재된 김정렴의 『아, 박정희』가 있다. 위 글들에서 박정희는 비장한 근대화 혁명가로 묘사되며 특유의 지도력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심복에게 배신당하여 일생을 서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다 순교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의 정책이 아닌 개인의 역량을 칭송함으로서 박정희 신격화 작업은 순항하였다. 그리고 이 신화를 보수우파가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김으로서 신화는 사실이 되어갔다. 영남 보수우파에게 있어 박정희를 신성화 하는 작업은 과거 자신들이 내린 정치적 결정이 옳은 일이었다고 자기정당화 할 수 있었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또한 보수우파의 박정희 신화 차용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점차 힘을 잃어감에 따라 대체할 긍정적 상징물이 필요했으며 박정희의 개인사에서 드러나는 기회주의적 면모는 역사적 굴곡마다 굴복한 우파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신화는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서 공약에 보수적인 영남의 표심을 겨냥하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지점에서 그 이념이 미시적인 차원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신화는 언론, 문화계로 촉발되고 정치권이 활용하여 시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칭송하는 박정희 시기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은 결코 박정희 개인의 성과로 볼 수 없다. 한강의 기적은 그 광명만큼이나 그림자가 짙다.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경제정책을 재벌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봐주었으며 관세혜택, 차관 지원, 독점적 권리 부여 등을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금융통을 위하여 정부는 한일협정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으며 5000명 이상의 군인을 희생하여 배트남전 경제적 이득과 국제적 입지를 다졌다. 노동자들은 저임금, 노조 탄압과 복지정책의 부재 상태에서도 산업역군으로서의 의무만을 강요받았다. 재벌은 기업가 정신보다는 관(官)에 기생하며 민(民)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정부는 차관으로 재벌들에게 고부채-성장지향 고투자 모델을 지원하였으며 그 부채의 책임을 ‘8.3조치’를 통하여 사회화하였다. 이는 박정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 개인의 역량을 넘어선 사회 전방의 희생과 압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 경제계발과 더불어 새마을 운동의 성과와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라는 대목도 허구에 가깝니다. 명지대학교 김보현 교수의 2014년 『민족주의 권력과 ‘협동하는 국민’ - 박정희정부 시기 농촌새마을운동의 사례』 논문은 현재 보수가 주장하는 새마을운동의 자발적 참여라는 프레임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새마을운동을 아래와 같이 재평가했다. “1970년대 농촌새마을운동에서 추구된 ‘협동’은 민주주의의 한 기초나 형태로 평가되기 어렵다. 그것은 규율과 통치의 합리성ㆍ경제성을 중심으로 고취ㆍ육성된 국가주의적 규범이자 체제였다. (중략) ‘협동’은 마을단위에서 개시와 유지, 이완과 해소 등 대부분의 국면마다 ‘사적 이익’ 증식의 기대 및 실현 여아에 의해 크게 규정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새마을운동은 국가의 마을 단위의 평가와 같은 통제에 의해서 집행되었으며 해당 사업에 대한 자발성에 있어 사적이익이 추구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당시 국민들이 국가의 요구에 응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닌 합리성에 기반을 둔 주체였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국민의 지지의 측면은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에 기고한 홍윤기 동국대 교수의 글에서 보수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집권 기간 중 계엄은 3번 선포되었으며 31개월 지속되었으며 위수령은 3번 5개월 발동되었다. 각종 비상조치는 9건으로 69개월 지속되었다. 위 총합은 105개월로 박정희 집권 기간 중 220개월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대중에 대한 탄압은 박정희가 열렬한 대중의 환호를 받다 순교한 근대화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보수의 상징이 된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박정희 정권이 시행한 경제정책은 현재 보수가 주장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와는 동떨어진 국가가 사회의 모든 재원을 분배하는 국가주의적 방식을 택하였으며 정치형태 또한 보수의 제일 이념인 자유와 합치하지 않았다. 보수가 박정희를 롤모델로 삼는 것은 자가당착일 것이다.

 

위 논의는 현재 박정희가 태극기 부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후광은 그의 ‘공’을 고려하더라도 상상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것은 아직 박정희 신화의 문법이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시위자들의 연령대는 자기 자신을 박정희와 동일시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고 북한과 베트남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던 ‘산업역군’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부정이 곧 당대를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과 등치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시대를 ‘좋았던 시절’로 미화하며 당시 체화한 반공,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따라서 시위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색깔론’은 그 당시 국가안보, 종북좌파 척결이라는 이념을 체화한 세대들을 소환하는 행위로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박근혜의 범죄행위 그 자체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태극기 집회는 박근혜가 내재하고 있는 박정희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역사의 저편으로 저버린 자신들의 세대가 공유했던 가치들을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태극기 집회를 이해함에 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외피가 아닌 그 내부에 있는 개발독재가 남긴 사고방식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아직 박정희가 남긴 유산 그리고 그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남긴 신화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민주적 소통을 막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건모

지속가능저널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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