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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농산물의 예

기사승인 2019.10.06  0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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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착한 소비의 논쟁적 주제 유기농산물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유기농산물 구매는 착한 소비일까요.

유기농산물을 둘러싼 본질적인 고민은 유기농 제품이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을 겨냥한다는 점입니다.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유기농을 사먹을 리는 없잖습니까. 유기농 제품은 값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농약을 안 치거나 적게 쳐서 생산량이 그만큼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단가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단가상승은 그동안 외부로 이전한 (사회적) 비용을 상품 내부로 도로 가져오려다 보면 불가피합니다. 단가가 오른 유기농산물 가격이 공정가격에 근접한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가격요인을 제외하면 유기농 식품은 소비자에게 절대선입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농약을 사용하면 예를 들어 배추의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단가문제가 개입하겠지만, 생산량이 많다는 점은 대체로 유리할 수 있습니다.

배추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환경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작게는 오랜 기간 농약에 노출된 재배농민의 건강에 위해가 가해질 수 있고 크게는 토양ㆍ하천오염으로 인해 불특정 다수, 즉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환경ㆍ건강ㆍ보건 등과 관련된 비용은 제품가격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비용의 외부화입니다.

농약을 쓰지 않는 영농법은 문제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에, 회피하는 비용이 유기농 생산비에 포함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농약 친 농산물에 관한 (사회적) 비용은 누가 부담할까요.

우선 식품 섭취과정에서 농약을 체내로 흡수하고 그로 인해 건강을 침해당하는 소비자가 몸으로 비용을 부담하겠지요. 아주 단순하게 상상해도 병원비 정도를 내는 사람이 생기겠지요. 계산되지 않지만 수명단축ㆍ건강침해 또한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무는 비용입니다. 앞서 강가의 피혁공장 예시에서는 공권력이 자본가를 비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용을 여기저기 분산해서 가죽제품 단가를 낮춰 그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준다는 중상주의적 접근법입니다. 국가가 자본가와 결탁해 노동자들의 부를 자본가들에게 이전시켜 주기도 합니다. 살인적 저임금 구조를 강제할 때 그렇습니다. 부의 이전, 자본의 축적에 국가가 편파적으로 관여한 것이지요.

농약남용은 농민의 건강을 해치고 다수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농산물 제품 가격을 낮게 유지한 비용을 처음에는 국민에게 이전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 결국 국가의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국민건강 관련 예산집행이 늘어나고 하수처리 비용도 상승합니다. 이러한 환경ㆍ사회 비용을 국민이 부담할 것인지 국가가 부담할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금과 예산 간의 함수문제도 풀어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의 이전과 달리 비용전가에서는 딱히 이익을 보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부의 이전에서는 자본가만 덕을 보지만, 비용전가에서는 비용부담 주체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유기농 식품에서는 모든 비용이 제품가격에 반영됐다고 한다면 소비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셈법이 작동합니다. 높은 가격, 말하자면 공정가격은 식품을 구입하는 부담이 커지기는 하지만 수익자부담원칙에 부합하기에 제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약으로 목욕한 농산물에 대해서는 비용이 외부화한 만큼 부담자가 늘어납니다. 소비자는 응당 포함될 것이고, 농민, 해당 농산물을 먹지 않는 국민들, 정부 등 다양한 부담자가 예상됩니다. 국가가 부담 주체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은 전국민이 세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용분담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배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까지도 배추생산 과정에서 유발된 환경오염에 피해를 입고, 사회적 대처비용을 마련하는 데 억지로 기여하느라 할 수 없이 세금을 더 내게 됩니다.

이모저모 따져볼수록 유기농산물 구매는 착한 소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익자 부담원칙이 지켜지니 정의롭다고 볼 수도 있고요.

비용 측면이 아니라 소득측면에서는 어떤 영향을 상정할 수 있을까요. 언뜻 ‘농약배추’와 비교해 유기농배추는 판매단가가 올라가니 생산자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넘어가는 돈을 더 많지만, 생산단가 또한 올라갔기 때문에 배추가격 상승이 생산자 소득증가로 이어졌는지는 전후사정을 따져봐야 합니다. 유기농산물 생산과정에는 아마도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되었을 것이기에 노동생산성이 더 높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생산자 범위를 말 그대로 생산자로 확대하면 어느 정도 고용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유기농 수요가 개발되고 늘어나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과도적으로(그 과도가 생각보다 길 수도 있습니다.) 그늘이 생길 수 있습니다. 농업산업 재편에 따른 농산물 시장 약극화의 심화입니다. 지금도 농산물시장에는 양극화가 존재합니다. 프리미엄급과 말하자면 ‘대충’급이 있지요.

유기농산물을 먹으면 자기 몸을 좋게 하고 가족을 좋게 하지만 동시에 돈을 더 내어놓아야 합니다. 공정가격을 지불한다는 측면에서 분명 착한 소비입니다. 하지만 착한 소비가 가능한 계층은 결국 중산층 이상밖에는 없다는 게 딜레마입니다. 공정해지려면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조금 더 착한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 진보적인 세상을 얘기할 때는 반드시 약하고 힘없는 소수자를 배려하려고 하는데, 유기농과 관련한 착한 소비에서는 이 틀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유기농산물시장 활성화는 농업산업 재편을 촉진해 서민이 먹을 기존 농산물산업의 위축을 부를 수 있습니다. 유기농산물에 주목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비유기농산물 쪽에는 덜 엄격해질 수 있겠지요. 양극화 확대는 저가 농산물 쪽의 안전성 등 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유기농산물과 저가농산물로 농업의 재편되면서 저가 농산물 생산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저가농산물 농업에서는 품질저하, 생산감소, 가격상승 등의 고민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 시장 기능에 의지에 착한 소비로 유기농업을 지원하면 취약계층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개연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극단적인 유사사례를 들면 바이오연료의 등장으로 굶주리고 아사(餓死)하는 제3세계 민중의 숫자가 늘고 있어 바이오연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먹느냐 태우느냐”의 전선이 유기농산물에도 확장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어쩌면 당장은 유기농을 장려하는 것 보다는 전체적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농산물 관리 체계 같은 것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책의 문제이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유기농을 원하기 때문에 서서히 ‘농약배추’를 줄여가자고 하는 논리가 먹히지는 않겠지요. 유기농과 관련해서는 소비자가 무는 공정가격이 꼭 공정시장으로 연결된다고, 또 공정사회에 닿는다고 장담하기 힘들어 보이기에 논란이 가중됩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착한 소비가 더 정치적인 소비가 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착한 소비가 저가 농산물 쪽에 투입될 자원을 빼앗아올 우려가 있다면 소비에 그치지 말고 자원포트폴리오에까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장에서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소비자가 되어 유기농을 생산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적극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유기농산물 시장에서 착한 소비가 진정으로 착한 소비가 되는 현실적이고 강력한 방법은 소비자들이 착한 생산자들과 연대하는 것입니다. 유기농시장은 성장시장이고, 구매력이 높은 시장이기 때문에 거대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더 들어올 것입니다. 시장 지배력이 큰 기업적 유기농이 아닌 지역 단위 농촌생산자들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기업이 아니라 농민이 주체가 되고 소외계층에게 소득을 나눠주는 유기농산물 생산협동조합 같은 곳의 농산물을 사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착한 소비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착한 소비의 정의가 지속가능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소비라면 말입니다. 유기농을 소비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건강한 소비 정도로 이해하는 게 합당할 것 같습니다. 물론 건강한 소비도 충분히 의의가 있습니다.

유기농은 그 그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대의 확고한 흐름입니다. 다만 그 흐름이 약자를 배제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생산주체가 누구인가를 검증해 기존 시장참여자들이 아닌 시민사회에 근거를 둔 새로운 시장참여자들을 구매를 통해 양성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유기농산물 구매로 착한 소비에 참여할 수 있는 계층이 특정돼 있다는 현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기농 소비자가 부르주아라는 점 때문에 엄숙주의 진영의 비판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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