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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사회의 메커니즘 (2)

기사승인 2019.09.29  08: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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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2000년 7월 3일 국민연금 등의 SRI를 의무화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 자본시장에서 사회책임투자가 어엿한 한 축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날은 SRI가 투자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한 기념일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자본시장을 곧바로 겨냥해 바꿔나가는 운동이기에 주류적인 흐름입니다. 몇몇 종교단체에서 책임투자 간판 단 펀드 몇 개를 운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점점 더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한 경제권 내에서 지속가능사회의 순환구조가 완성됩니다. 그러나 선순환을 막는 또 다른 변수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참치분쟁과 마찬가지로 대외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연기금의 SRI를 의무화했다고 칩시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고무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거리를 완전히 떨어낼 수는 없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매우 개방적입니다. 우리 연기금이 강원랜드를 외면하는 사이 해외에서 유입된 핫머니들이 강원랜드에 투자합니다. 이후 상황은 앞서 극단적인 것으로 상정한 예시처럼 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비용의 급증이 예상됩니다. 이때는 강원랜드 투자수익을 핫머니가 자기 나라로 가져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사회적 비용은 비용대로 물고 투자수익은 투자수익대로 잃게 됩니다.

수익률 외에 그 어떤 가치에도 주목하지 않는 핫머니의 발호는 우리나라에서 SRI시장의 성장을 방해할 게 뻔합니다. 자본시장의 개방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서 일국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지속가능기업의 육성입니다. 일본은 해외에서 쿨머니를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가능화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뭐 연애를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연애를 하자’ 이런 발상입니다. ‘제대로 된 연애’는 당연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가치투자하는 쿨머니의 유치입니다. 워렌 버핏에 의해 유명해진 가치투자에다 사회책임이란 침로를 설정하면 SRI가 됩니다.

핫머니는 단기적인 기업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최고경영자(CEO)들이 단기성과에 목매는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분기 자본주의(Quarterly Capitalism)’라는 미국식 자본주의 용어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듯이 핫머니의 운영원리는 가치를 배제한 무조건적 성과의 극대화를, 그것도 단기적인 관점에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중장기 투자를 선호하는 쿨머니가 우리나라에 투자를 고려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속가능경영기업들에다 하겠지요. 우리나라에 지속가능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쿨머니 때문에라도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건실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당장 변동성이 줄어드는 것만 해도 큰 소득입니다. 국내 연기금에 SRI 원칙이 관철되고, 우리 자본시장 내에 ‘착한 펀드’들이 확산돼 점진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을 촉진한다면 해외로부터도 쿨머니가 유입돼 우리 자본시장은 안정적으로 견실한 성장을 구가할 수 있습니다. 투기자본 규제나 자본시장 진출입 문턱을 다시 쌓는 등 오랜 토론과 제도개선이 필요한 해법을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자본시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답답한 점은 정작 문제가 많은 핫머니에 대해서는 어찌 해볼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지요. 개별 국가는 국가대로, 세계 금융시장은 그들대로 (핫)머니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해답을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핫머니는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로스를 연상시킵니다. 몸은 인간이고 머리와 꼬리는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여러모로 상징적입니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에 욕정을 품고, 그 황소를 유혹해 낳은 자식이 미노타우로스입니다. 미로 속에 갇힌(또는 숨은) 미노타우로스는 제물로 바쳐진 인간 소년ㆍ소녀들을 잡아먹다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뉴욕 월가나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 황소상이 있다는 사실을 신화와 연결지어 생각하며 흥미롭습니다.

 

 

핫머니 통제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열린 G20 회의 등에서도 강력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핫머니를 제어하지 못하면 건실한 나라도 한순간에 망할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도에 따라, 또 핫머니 세력의 이심전심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투기적 자본거래에 세금을 물리자는 토빈세 구상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는 쟁점으로 오랫동안 탁상공론 취급을 받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듯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란 경제학자가 1978년에 처음 주창한 토빈세는 쿨머니 말고 핫머니만을 혼내주자는 설계입니다. 투기적 거래에 세금을 물리면 아무래도 단기투자가 줄어들고 중장기 투자가 늘어나겠지요.

내는 세금만큼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토빈세를 부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토빈세를 도입한 나라와 도입하지 않은 나라 간에 차이가 생기겠죠. 토빈세 도입이 그 나라에 자본유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토빈세 도입 및 시행을 실제로 검토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본유치보다 자본시장 안정이 훨씬 더 우선한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자본유치로 인한 이득보다 (투기)자본의 전횡에 따른 (사회ㆍ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토빈세는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표현형이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카피 레프트’와 문제의식은 비슷합니다. ‘카피 라이트’는 저작권을 보호합니다. ‘카피 라이트’에서는 윈도 같은 운영체제(OS)나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라고 합니다. 한데 디지털 시대에서는 한 번 제품을 개발하면 판매할 사본을 만드는 데 거의 돈이 들지 않습니다. 제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개발비는 인정해 주어야겠지만 단순 복제비를 과다하게 책정해 불노소득을 너무 많이 받아 챙긴다는 비난이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쏟아졌습니다. 같은 OS이지만 리눅스는 “함께 나눠쓰자.”며 MS와 정반대로 ‘카피레프트’의 길을 걸었습니다. 핫머니을 규제하는 방식에서 토빈세는 ‘카피레프트’와 정반대로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합니다. 반대입장처럼 보이지만 같은 견지에 서 있습니다. 토빈세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반면 ‘카피라이트’에서 거둬들이는 저작권료는 사적인 이익으로 귀속됩니다. 편이 다른 것이지요.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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