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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사회의 매커니즘 (1)

기사승인 2019.09.28  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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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큰 그림으로 넘어갑시다. 하나의 버틈라인이 아니라 세 개의 버틈라인, 즉 경제ㆍ환경ㆍ사회성과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경영방침을 지속가능경영이라고 했습니다. 이해관계자를 경영의 중심에 놓는 사회책임경영은 지속가능경영의 동의어입니다.

자본시장에서 기왕이면 지속가능경영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자는 게 SRI입니다. 당연히 스크리닝 과정에 ESG를 살펴보겠죠.

 

소비자들 또한 기왕이면 지속가능경영을 하는 기업의 상품을 사자고 하는 게 사회책임 소비입니다. 윤리적 소비, 지속가능소비라고도 합니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아니면 같은 값이면 CSR을 잘 이행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는 생각입니다. 해외시장에서 물건을 사올 때 생산자의 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즉 공정가격을 주고 구매하겠다는 소비자 운동이 공정무역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가 대표적인 공정무역 상품입니다. 인과관계의 선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회책임소비나 공정무역은 같은 흐름으로 파악됩니다.

소비자들은 소비하고 남은 돈을 저축합니다. 요즘은 저축의 수단으로 대신해 펀드에 많이 가입합니다. 펀드에 가입할 때 SRI펀드를 찾을 수 있습니다. SRI에 필요한 재원이 이렇게 조달됩니다. 공공부문에서 재정이나 연금 등을 기반으로 SRI 쪽으로 돈을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SRI의 재원은 기업 쪽보다는 가계와 특히 공공부문에서 발견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 CalPERS) 같은 것들입니다.

국민연금 등이 SRI에 뛰어들 때 ‘수탁자 의무’라는 논쟁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수탁자 의무의 골간은 당연히 높은 수익률의 달성이겠지요. 국민들에게 노후에 오랫동안 많은 금액의 연금을 지불할 수 있게 안정적으로 최대한 높은 수익률을 올려야 하겠지요. 그러다 보니 국민연금 등의 자산운용 규칙은 엄격하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탁한 사람의 재산을 잘 보존하는 것을 물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수탁자 의무’는 상황에 따라 SRI와 상충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전통적인 투자방식, 그러니까 재무적인 성과만을 기준으로 삼는 투자를 했다고 칩니다. 예를 들어 카지노 업종인 강원랜드의 주가수익률이 높아 강원랜드 주식을 많이 사들였습니다. 주가가 오른다고 기업이 꼭 돈을 많이 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일반적으로 그 반대관계이지만) 대체로 비례관계에 있으며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규제가 풀린다는 전제 하에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강원랜드의 증자에까지 참여해 제주랜드, 경상랜드 등으로 도박산업을 확장하는 데 결과적으로 기여한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전국이 도박장으로 변하고 온 국민이 카지노를 즐기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맨날 카지노판을 전전하며 술과 도박에 절어 살게 됩니다. 사회가 결딴날 지경입니다. 그렇다 해도 국민연금이 다른 주식을 샀을 때에 비해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면 원론적으로 ‘수탁자 의무’에 위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공성이 강한 펀드입니다. 국민의 돈을 맡아서 운영하는 펀드인데 투자행위로 공공성을 해친다면 내용상 ‘수탁자 의무’를 이미 저버린 것입니다.

또 다른 상황논리도 존재합니다. 다시 국민연금이 강원랜드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칩시다. 전문직 종사자인 김철수씨는 한 달에 100만원씩 국민연금에 돈을 내고 있습니다. 김철수씨가 연금 관리공단에서 보내온 실적표를 보고는 “국민연금이 잘 운영되고 있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까와 같은 사연으로 강원랜드가 강원도에 머물지 않고 서울 연희동에 새로이 문을 열었습니다. 마침 김철수씨 회사 근처입니다. 김씨는 심심풀이로 한두 번 카지노를 출입하다가 도박중독증에 빠지게 됩니다. 알코올 중독까지 겹쳐 한손에 술, 한손에 칩을 들고 거의 부랑아 신세로 전락합니다. 회사에서도 쫓겨난 상태입니다.

생산적인 활동을 떠나 도박장 주위를 배회하는 김씨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다달이 내는 국민연금 납부금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만일 김철수씨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서울 한 가운데 도박장을 열었으니, 한 명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생산적인 활동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국민연금 자체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른 바 ‘죄악의 주식’에 투자했을 때는 초기에 높은 수익률을 실현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원금의 유입이 줄어들어 총자산의 감소가 예상됩니다.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국민연금 투자수익보다 더 많은 공공지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노숙자 및 알코올 중독자를 감당하는 복지비용이 국민연금 투자수익과 대비해 너무 과다해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형국이지요.

공공지출이 늘게 되면 종국에는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김철수씨등 납세능력이 멸실된 사람들을 감안하면 도박장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성실한 납세자들의 부담이 훨씬 더 불어납니다. 다른 사람 몫의 국민연금에 늘어난 세금까지.

처음에는 ‘수탁자 의무’ 때문에 재무적인 성과에 초점을 맞춰 투자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비재무적 성과를 도외시한 투자는 자칫 공공지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납니다. 국민연금 등 공공성이 강한 자본은 개별 재무제표를 참조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ㆍ편익을 계산하며 운용하는 게 타당합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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