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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기업민주화, 직장내 민주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기사승인 2018.04.19  16: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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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총수 일가와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민주적 이해당사자 지배구조로 이행해야

김영석(민주노총 건설기업노조 삼부토건지부 사무국장)

   
 

복고적 권위주의 정권의 광폭한 역주행으로, 보다 더 넓은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이들의 한숨 소리가 깊다. 정치민주화마저 난도질당한 처지에 경제민주화까지 드러내 얘기하려고 하니 마음이 무척 무겁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보면 생계의 문제는 우리 곁에 바싹 잇닿아 있고, 우린 그 절박한 생계의 문제를 정치적 논제로 삼아 미래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그려 나가야 한다.

선거철이 돌아와 다시 경제민주화 이슈가 여기저기서 논의되고 있다. 동반성장이니 포용적 성장이니 하면서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상인 간의 불공정한 이익구조 문제 해결을 내세우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 청년들간의 불평등한 소득구조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물론 긴요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렇지만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문제의 해결은 재벌 대기업에게 공정거래법과 같은 기업 외부의 제3의 힘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대자본의 태생적 속성상 현재와 같은 기업의 지배권력 구조로는 대·중소기업간, 총자본·총노동간 동반성장이나 포용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우선 땅콩회항, 남양유업 밀어내기와 같은 특권적 자본주의 권력이 생겨나는 근원을 해체하고 통제해야만 한다. 그런 후에라야 우리 서민 대중들이 바라는 아득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림들이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성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규정한다. 

또한 제119조 2항(이른바 경제민주화 헌법 조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합의 선언하여, 시장 지배 권력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여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평등한 삶을 향유할 것을 약속하고 있지다. 하지만  헬조선의 작금의 한국 사회는 재벌 가문들에게 부와 권력이 심각하게 편중되어 각 경제 주체들간의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며, 이런 경제적 불평등은 세대간 계층간의 온갖 사회 경제적 부조리와 비효율성을 야기하여 조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은 현실과 동떨어져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흔히 회자되는 경제민주화는 재벌계 대기업의 횡포를 방지하여 각 경제주체들간의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제민주화를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문제 또는 대기업의 독과점적 시장지배구조 문제 개혁에만 국한시켜 계열기업간 상호채무보증 해소, 지배대주주의 책임성 강화, 소액주주권 강화, 경영투명성 확보 등을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외부적 통제수단을 기초로 한 주주권 강화 방향의 개혁과제만을 주장하고 진행해 왔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이런 방향의 개혁은 대기업의 약탈식 이익 독점을 제한할 수 있는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 없다. 기업의 일방 당사자일 뿐인 주주의 배만 더 불려주는 결과만 초래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의 약탈적 경제 지배는 기업 내부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재벌 가문 지배주주의 황제식 지배권과 비민주적 기업경영지배체제에 기인한다. 대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종업원, 채권자, 협력업체, 소비자, 정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기여와 헌신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럼에도 황제식 지배주주가 그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이를 전횡해 왔기 때문에, 그 밖의 이해당사자들은 결국 약탈과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모두에게 권한과 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만이 아니다. 대기업이 주식 발행을 통해 생산적 자산에 투여하는 자금조달은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상장기업 주식은 지배주주의 보유지분이 적고 소수주주들은 단순한 투자수익만을 배분받을 뿐이다.

대기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관들 또한 이제 단순한 대부업자가 아니다. 바로 선 은행이라면 담보물이 아니라 기업의 제반 역량과 미래가치를 보고 자금을 투자한다. 이제 건전한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단기적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장기적 계획에 의한 안정적 성장과 이를 통한 이해관계인 모두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재벌가문과 주주를 넘어서 기업의 이해관계인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이해당사자 기업지배 권력 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인 것이다.


지배주주의 무소불위 권력행사로 생존권은 박탈되고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과거 국가주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특혜성 금융과 제도적 지원으로 성장한 재벌 총수 지배 하의 대기업은 그 동안 권위주의적 정치 권력으로부터 금융적 수단과 정경유착 등을 통해 외부적 통제와 견제를 받아왔지만,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통해 독재 정부가 한 때 해체된 이후로는 총수 일가의 절대적 지배권을 견제했던 유일한 권력이 제거됨으로써 총수 일가의 경제권력 집중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골 깊은 황제식 경영은 기업을 둘러 싼 이해당사자들 간의 자본주의적 대립과 갈등구조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은 기업 사회라고 불릴 만큼 현대사회에서 그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일반적으로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주주는 기업경영에 대한 전제적 권력을 행사한다. 생사여탈권을 쥔 그들에게 찍히면 종업원은 맘대로 해고되고 협력업자는 한 순간에 퇴출당하기 일쑤다. 필자가 한 기업의 노동자로 20년을 살아오면서 직접 목도한 것도 많다.

기업 총수 일가의 권한과 전횡은 범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주주총회는 총수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이사와 감사를 선임하고,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와 감사는 그들을 선임한 지배주주인 총수일가에게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임원들의 불필요한 이의제기는 자리보전을 힘들게 할 뿐이다. 대부분의 이사회 결의사항들은 총수와 총수 일가들의 협의만으로 밀실에서 결정되고 이사회의 구성원과 기타 임원들은 단지 결정사항에 대해 요식행위만 실행한다. 1조원에 이르는 부실사업들에 대한 투자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기업회생절차에 이르러 회생을 도모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이 장기간의 부실화 진행과정에서 힘 있는 거대 채권은행들은 지배주주의 독점적 경영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 준 대가로 알짜 담보물을 취득했지만, 종업원, 상거래채권자, 협력업체, 소액 채권자 등 수 많은 이해당사자들은 이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대기업 계열기업 사이에 모회사와 자회사의 모든 자산은 지배주주와 그 혈족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계열사간 자금대여, 담보제공 등은 어떤 고민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해당 회사가 아주 큰 위험을 부담하는 이사회의 결의임에도 그 계열회사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의 권리나 이익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직 지배주주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니 아무런 잘못과 거리낌이 없이 모든 것이 실행된다. 내부 고발이 없으면 그 위법성과 책임성은 드러나지 않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한반도에 무소불위의 독재적 세습권력은 북쪽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기업 내에 이런 독점적 권력구조의 존재로 인해 기업내 민주주의는 자라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구조는 경직되어 부서 간 수평적 의사소통은 저절로 단절되고, 오직 황제적 권력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인 상명하복의 수직적 의사전달 구조만 작동한다능력 있고 성실한 인재들은 한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임원들은 최고 권력자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움직인다.

기업내 중요 정보들은 회사의 성장과 경제사회적 기여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에 대한 보고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은 발휘될 여지가 없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러한 지배구조로 인해 노동자들은 능동적 참여와 헌신으로 기업의 혁신과 성장에 기여하기를 포기하고 또박또박 월급만 받거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자신들의 망한 책임 없음을 선포하고 생존권 사수 투쟁으로 치닫는다. 강성한 기업지배 총수는 강성노조와 강성채권자들을 창조적으로 생산해 내고, 그 지배 총수가 치사하기까지 하다면 이해당사자들은 더욱 더 치사해져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기업구조에서는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해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인간형은 생산되지 않는다. 장기간의 독점적 지배구조 체제가 탄생시킨 너무나 자연스런 풍경들이다.

 

<경제민주화는 기업민주화, 직낭내 민주화에서 시작되야 한다 (2)>에서 계속

김영석

이소연기자 luxjin@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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