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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의 지속불가능성 (1)

기사승인 2018.02.13  17: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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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안마다 전해진다는 앞서 언급한 얘기를 떠올려 봅시다. 옛날에 참 잘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노름에 빠져서 문전옥답을 모두 팔아먹었다. 이어 상경 이야기가 나옵니다. 1960~70년대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너나없이 농촌을 떠날 때입니다. 공통적으로 서울에 올 때 갖고 온 것이라곤 숟가락 몇 개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전답을 다 날리지 않고 한 3분의 1만이라도 남겨 아버지가 서울에서 자리잡을 때 전셋돈이라도 내줬으면 덜 고생했을 텐데. 아버지 세대의 고생은 당연히 아들 세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흔히 목격하는 이 사례에서 할아버지는 무엇에 실패한 것입니까. 이 책의 주제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할아버지의 행태는 ‘지속불가능한 가계 운영’이었던 것이지요.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근본부터 흔들립니다. 애국심이 부족해서일까요,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입니까. 현재와 같은 사회구조에서 다출산은 개인과 가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사회참여까지 갈 필요도 없고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엄청납니다. 그 비용 가운데 사교육비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모 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원은 한정돼 있고, 결국 자녀양육비용은 계속해서 올라가니 낳는 자녀의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새가 먹이감이 줄어들 때 낳는 알의 숫자를 줄이는 것과 동일한 발상입니다. 결국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가계ㆍ개인의 지속가능성이 상충하는 상황이 빚어진 셈입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가 아니라 가계ㆍ개인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차원의 변경’ 또는 ‘차원의 병합’은 지속가능발전의 개념 자체에 이미 포함돼 있습니다. 개발이 적정하게 이뤄진다는 말은 반복하자면 유한한 자원을 세대 간에 사이좋게 나눠가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충족시키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대신 아들과 손자 세대를 위해 재산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개인 또는 가계의 단독적인 지속가능성 추구가 온전한 지속가능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마을 지주로 노름도 안 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후대에 물려줬다고 칩시다. 아들 손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남겨주기 위해 소작인을 최대한 착취했습니다. 이때 아들과 손자의 수중에 들어온 재산은 당장은 더 커져 있겠지만, 가정법을 써서 분노한 소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가옥을 불태우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온실가스도 좋은 예가 됩니다. 유럽과 많은 나라에서 나름대로 애를 쓰며 온실가스를 감축했지만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미국이 끝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뿐 만 아니라 마구잡이로 배출한다고 칩시다. 지구의 미래는 위협받게 됩니다.

지속가능발전에서는 세대간의 문제, 즉 통시적인 문제와 함께 세대 내의 문제, 즉 공시적인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면서, 핵심 과제로 빈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른 바 남북문제가 지속가능성의 현안이 된 것입니다. 북부의 잘사는 나라들과 남부의 못사는 나라들 각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토의정서의 의무감축국이란 표현이 상징적입니다. 그러나 내부의 불균형은 남북차이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존재합니다. 본질적인 사안은 아니지만 환경전도사로 변신한 앨 고어는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거대저택에서 살면서 ‘1인당’으로는 너무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힐난을 받기도 합니다. 고어와 이디오피아 난민 캠프에 사는 아무개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하면 그 격차가 대단할 것입니다. 한국인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지부진하지만 공동의 대처방안이 모색되고 있고, ‘고어’의 사례는 어느 정도는 지엽적인 문제제기일 수 있습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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